요양원에 입소하신 아빠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모시던 3년간 감기한번 걸리지 않으셨는데 입소하고 이주일만에 아프시다니
순간적으로 쓸데없이도 선택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아니야, 그렇다고 누가 모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도 더 이상은 무리인 것을 알잖아.'
아빠가 아프신걸 엄마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이 된다.
사서 고민을 하시는 엄마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된다.
그걸 지켜보는 자식들에게는 엄마의 잦은 한숨 만큼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래도 말씀을 안드릴 수는 없어 전화를 한다.
역시나 엄마는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급하다.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상으로는 크게 아프시진 않으신 것 같다.
열도 없으시다고 하는걸 보니...
옆에 계신 어르신이 전에 뵀을 때 열이 올라 계시더니 옮으신건가?
아빠를 집에서 모시면서 홀리스틱 테라피를 추구 했었다.
매달 아빠가 드실 15가지가 들어가는 재료를 준비하던 엄마의 노력이 있었다.
가족만 출입하던 집과 여러사람들이 모여계신 요양원이 같을 수는 없겠지.
괜한 자책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서두르는 엄마를 모시고 필요한 것을 챙겨 아빠에게 갔다.
두 분의 와상 어르신이 누워계신 방으로 들어서니 왼쪽의 아빠가 보인다.
두 눈을 꼭 감고 움직이지도 않으신다.
"아빠!"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으시다.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걸 보면 주무시고 계시는 듯 한데
아예 눈을 뜨지를 않으신다.
걱정된 엄마는 아빠의 코를 잡아 쥐어보지만 아빠의 눈은 뜨여질 생각이 없다.
요양원 간호사분이 아빠의 엄지 손톱 위를 꾹 누르니 아픈 듯 얼굴을 찌뿌리신다.
숨소리에 섞여나오는 가래의 걸걸함을 엄마는 그냥 두지 못한다.
챙겨다 두었던 맥문동차를 따뜻하게 마시면 가래가 가라앉는다며 이야기를 하신다.
걱정이 묻어나는 엄마의 당부에 요양원분들도 열심히 귀를 기울여 주신다.
집에서 해주듯이 누가 해줄 수 있을까?
드시던 약에 항생제만 추가하셨다는데 아빠는 우리가 나설때까지 눈 한번을 뜨지 않는다.
다행히 열은 없으시다.
열이 없는데 항생제를 드시게 했다니 양약의 과다사용을 조심하는 내 가치관과 충돌을 빚는다.
'아니, 열도 없는데 항생제를 쓰나? 과한 약 사용으로 정신을 못차리시는 듯 한데...'
한마디 하려다 아빠를 맡겨놓은 입장에서 말을 아낀다.
상황이 이러니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요양원에서 친정접으로 가는 길에 차 안이 적막하다.
모두 자신의 생각 속으로 빠져 든다.
친정집에 엄마를 내려드리고 엔질오일을 갈아야 한다는 신랑과 서둘러 집으로 간다.
오랜만에 하루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운전기사 역할을 해주는 신랑에게 고맙다.
집에 와서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온 몸이 녹초가 된 듯 무거운 피로감에 바로 침대에 몸을 누인다.
'내가 이 정도면 엄마는 더 할텐데...'
전화를 드려볼까? 하다가 엄마의 걱정을 나도 소화하기 어려울 듯해서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눈을 감고 잠깐 존 듯한데 어느새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다음날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역시나 밤새 뒤척이신 듯 잠을 별로 못 주무셨다고 하신다.
걱정스러운 맘에 "엄마, 그렇다고 아빠를 다시 모셔올 생각은 하지마셔." 라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밤새 그 생각 했는데." 하신다.
"아빠 지금 계신 요양원도 보면 아빠 상태가 제일 안좋아, 아빠같이 1등급 어르신은 요양원에서도
잘 안 받아 주려고 한단 말이야. 힘드니까"
"네 작은 고모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등급이 높은 사람도 그렇고 특히 남자는 잘 안받으려 한다고."
요양원 간호조무사로 계신 작은 고모에게서 들으셨나 보다.
"그러니까, 이제 아빠를 다시 집으로 모셔올 생각은 하지마시라고. 엄마도 아픈데 다시 모셔오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실수도 없고 그때 다시 보내려면 받아주는 곳도 없을 수 있어. 여기서 받아주니
아빠를 모실 수 있었지. 사람들도 좋고 가정적이고 분위기도 좋잖아. 이런 곳 들어가기 어려워."
"그래, 그건 그렇지."
걱정많은 엄마의 체념섞인 답변이다.
"응, 아빠를 요양원에 맡기기로 했으면 엄마도 내려놓을 건 좀 내려놔야해. 그래야 엄마가 편해."
"그래."
도움안되는 내 잔소리에 엄마도 수긍을 하신다.
'그래, 50년을 같이살고 몸져 누우시고 3년을 모시고 계셨으니 아빠와 정신적, 신체적으로 분리되는 과정이겠지.'
오전 10시 30분 늦은 아침을 준비하신다는 말씀에 식사 맛있게 하시라며 전화를 마무리 한다.
엄마는 우리 부부의 사이를 참 부러워하신다.
아니 엄마의 첫째 사위이자 내 남편인 신랑이 참 예쁘다고 하신다.
그도 그럴것이 신랑은 대부분의 경우 내 편이 되어준다.
오죽하면 아이들도 "아빠는 엄마밖에 몰라."라고 할까
엄마에게는 무엇보다 신랑이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러 가는 것이나 좋은 곳을 보러가는데
나를 챙기는 모습이 부러우시지 않을까 싶다.
아빠는 건강하실 때 엄마에게 매번 말씀하셨다.
"나 퇴직하고 차 개조해서 우리 전국을 돌아다니자. 경치좋은 곳에서 차 정박하고 잠도 자고."
입버릇 처럼 이야기 하시던 그 말씀을 엄마만 빼고 자식들 누구도 믿지 않았다.
엄마의 믿음 또한 오래지 않아 아빠가 아프시면서 깨지고 말았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욱하고 욕잘하는 아빠는 남편으로써도 아빠로써도 100점 짜리는 아니었다.
어린 우리 세남매를 두고 아빠는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엄마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식당일을 했다.
자정이 넘어 집에 오곤했던 엄마를 기다리며 밖에서 뛰어놀다 시끄럽다며 어른들께 혼났던 기억이 난다.
아빠대신 오빠대신 여자라는 이유는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엄마의 고됨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 싶다.
특히 남편의 폭력과 욕설은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주었을까?
'진짜. 우리 안버리고 집 안나간 것만 해도 감사하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은 원망과 함께 안쓰러움이 있고 서러움과 함께 고마움이 있다.
그 시절의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그 시절의 엄마가 너무 미운 양가감정
상처받았던 어린 나에게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 시절 당연한 듯 행해졌던 여자아이의 마음을 나라도 다독여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많이 풀어졌을 때, 그땐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나를 다독였듯이 엄마의 아픔과 상처도 다독여 드리고 싶다고
그러면 우리 모두 상처들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