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숨 쉬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
머릿속에 무거운 바윗돌 하나 들어앉아 내리누르는 듯 머리와 가슴이 마냥 무거울 때,
누군가가 나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내 의도를 몰라줄 때,
인정받고 싶은 나의 마음을 외면할 때,
세상에 나 혼자 솟아나와 어쩔줄 모르고 안절부절할 때,
부모도 형제도 신랑도 자식들도 모두 내 편이 아닌 것 같을 때,
능력하나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이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때,
심하게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내가 안쓰러울 때,
나 좀 봐주라고 나 좀 알아주라고 나 여기 있다고 크게 소리지르고 난 후 그 적막감이 몸서리치게 외로울 때,
그럴 땐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나 왜 이러지? 뭐가 서운했지? 왜 이런 감정이 들지?'
물어본다고 한 들 항상 답이 툭 튀어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용히 질문을 던지다 보면 내가 보인다.
그래 인정받고 싶었구나,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구나, 사랑이 필요했구나
그리고 깨닫는다.
남에게 인정받고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나에게 내가 원할 때 사랑과 인정과 위로를 줘야하는 당신도 참 피곤하겠구나!
내 안에 생긴 감정은 오롯이 내 몫임을 알지 못할 나이도 아닌데...
내 속에는 여전히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나를 안아주길 바라는 소심한 아이가 있다.
이 조그많고 소심하고 겁많은 아이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내 아이들과 자꾸 부딪힌다.
어딘가에서 나와같이 상처를 받고 오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내 어릴적 상처를 굳이 들춰내며 '라떼는~~.'을 시전하기도 한다.
어제 아침의 일이다.
매일 지각을 일삼는 아이로 인해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아이 담임의 전화가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감기로 인해 몸이 무거워서 늦잠을 잤다. 8시 20분 두 아이는 벌써 학교를 갔고 둘째만 아직 꿈나라다.
순간 내 컨디션을 아이에게 투영한다..
"이 시간까지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 얼른 일어나, 오늘도 지각이잖아."
아이는 나의 고함에 놀라 일어나더니 얼굴을 찌뿌리며 화장실로 향한다.
내 조바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다.
어느덧 시간이 50분을 넘어가니 어김없이 담임으로 부터 전화가 온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금 학교갈 준비 중이예요. 얼른 보낼께요."
"네 어머니 아이가 이제 지각을 하면 안돼요. 내년에 고등학교 진학할 때 문제가 돼요, 지각안하게 좀 해주세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야단을 맞는 듯 해서 기분이 별로다.
"그러게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네요."
"네 빨리 오라고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아이를 보니 아직도 화장실에서 나오지를 않고 있다.
"방금 선생님한테서 전화왔어. 곧 수업시작 하겠다. 아직도 준비를 하고 있으면 어떻하니, 라떼는 지각하면~~~."
끝없는 잔소리에 아이의 눈이 점점 뱁새눈이 된다
듣기 싫어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도 쉴새없이 말이 밷어진다.
"나도 선생님 전화 받기 싫다. 제발 지각하지 말자."
외쌍커풀이 별로라며 쌍커풀이 없는 한쪽눈에 쌍커풀 테이프를 붙이던 아이가 화장실 문을 붙잡고 있는 나를 밀어내고 화장실 문을 닫는다.
더 부딪히면 안될 듯 해서 난 꼬리를 말고 방으로 들어와 책상앞에 앉는다.
잠시 후 화장실 문여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9시다.
그런데 나왔던 아이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드라이기를 켠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입밖으로 터져나온다.
'차라리 내가 나가야지, 안보는게 낫지.'
다짐을 하지만 또 오늘 아침에도 반복인 일상이 된다.
입이 댓발 나와서 인사도 않고 집을 나서는 아이가 못내 서운하다.
종일 가슴에 무언가 얹혀있는 듯 소화도 안되고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이 된다.
내가 어릴적에는 지각하면 선생님에게 맞고 집에서도 많이 혼났었는데 싶다.
그렇다면 지각했다고 맞는 것이 옳은 교육인가? 생각하면 그건 아닌 듯 하다.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유년시절은 나를 많이 억압했고 그 기억은 아직까지 나를 옥죄고 있으니까
그럼 어찌해야 할까?
책을 읽어봐도 생각을 아무리 해도 나는 잘 모르겠다.
네 삶이니 네가 알아서 해. 할수도 없고
엄마로써 내가 문제인가? 싶어진다.
내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고놈의 자식, 옛날같이 맞아봐야." 하는 신랑의 말에 화가 치민다.
"폭력은 안된다니까, 특히 여자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가출이라도 하면 그 여파가 남자아이보다 훨씬 크다고."
내 답답함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위에 답답함이 켜켜이 쌓이는 느낌이다.
매번 반복되는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답답함은 켜켜히 쌓여 갈 것이다.
어릴적 나는 학교를 지각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아이였다.
국민학교(라떼는~)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까지 내리 개근상을 받았다.
성실함을 나타내는 지표라도 되는 양
나는 그 개근상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볼 수 있는 여건도 안되었고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은 모두 나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방과 후 집에서 혼자 그리고 자르고 놀던 종이인형은 불쏘시개가 되었다.
울고 불고 하던 나는 엄마의 빗자루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릴적 기억에 한번 최우수상을 자랑스럽게 가져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잘했네."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너무 좋았고 내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때 옆에 있던 한살터울의 오빠가 울었다.
엄마는 "왜? 왜울어?" 하며 오빠를 보았고 오빠는 "난 상장을 못받아서..."라고 했다.
엄마는 "괜찮아, 뭘 그런걸 가지고 남자가 우니? 상장 같은거 별거 아니야, 그게 뭐라고 울어?"라셨다.
순간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공부를 하지 않은 건 나이지만 그 뒤로 공부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렸다.
연년생 남매! 나는 항상 오빠보다 반절이었다. 먹을것도 새뱃돈도 칭찬도 인정도
아니 반절도 안될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어린 내가 짊어질 짐은 오빠보다 배였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해야했고 연탄을 꺼뜨리지 말아야 했으며 동생을 돌봐야 했다.
짐을 던져버리는 행동을 했을 때는 아빠의 묵직한 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마는 항상 방관자 이거나 적이었다.
그 시절 그 설움들은 지금도 남아 문득무득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튀어 나온다.
신체적으로 상처를 낸 아빠보다 가슴에 구멍을 뚫어놓은 엄마가 더 원망스러웠다.
이제 다 컸으니 나도 성인이니 그만 원망해야지 싶다가도
그 때 엄마의 고단함을 이해하고도 남을 나이이건만
나는 아직도 가슴에 구멍을 메우지 못하고 엄마가 밉고 싫고 안타깝고 서럽다.
그리고 이 마음이 아이들에게 갈까 두렵다.
그 시절 내가 너무 안쓰럽워 꼭 안아주고 싶다.
"그 모든 것은 네 잘못 아니야. 지금까지 수고했고 잘 살아냈어. 대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