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만의 재회

부모님을 뵈러 가다.

by 쏘일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못 찾아뵌 부모님께 다녀왔다.

침대에 누워만 계시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돌보시는 엄마를 두고 한 달 반을 자리를 비우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나 요즘 부쩍 자식들에게 전화가 잦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엄마를 보면 ‘엄마도 연세가 들었구나.’ 싶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40년이 넘어가는 철 대문은 어느새 녹이 여기저기 묻어있고 자물쇠를 넣는 곳이 녹이 슬어 열쇠를 넣고 몇 번을 돌리려고 해야 겨우 열리고는 한다. 고등학교 1, 2학년쯤 되었을 때 작은 1층 주택을 사서 가족들이 이사를 들어올 당시에도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던 집이었다. 이 집에서 벌써 30년을 넘게 살았으니 40년이 아니라 50년이 더 지난 듯하다. 녹이 슨 자물쇠통에서 열쇠가 한참을 머물러도 잘 열리지 않아 자물쇠통을 바꿔드린다고 했었는데 엄마는 익숙한 것이 좋다 시며 못하게 하신다. 엄마의 고집은 내가 꺽을 수가 없다. “불편한 건 엄마지. 뭐!”라며 넘어갔었다.


오랜만에 보니 녹슨 철 대문도 왠지 운치 있고 반갑다. 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 한 사이에 아빠 휠체어가 나다닐 수 있도록 엄마가 사람을 불러 계단을 깎아 내리막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대문에서 골목길로 나가는 자리에 계단이 있었는데 그곳의 경사가 너무 져서 아빠가 나가실 때뿐 아니라 엄마가 나다니실 때도 넘어지실까 싶어 순간 걱정이 된다. “엄마! 이거 했네. 그런데 너무 가파르게 만들어놨다.” 나의 한마디에 엄마도 불만이 많으셨는지 일하신 분과 소통이 안 됐다며 믿고 맡겼는데 이렇게 해놨다고 길게 이야기하신다.

내가 없는 사이 자주 찾아왔던 동생은 매번 듣는 이야기인지 옆에서 나에게 살짝 눈짓한다. 아무 말 말고 그냥 듣고 넘기라는 뜻이다.


오랜 시간 우리 가족들의 보금자리였던 주택은 내가 시집가기 전에도 손이 많이 갔다. 아빠는 지붕이 새면 지붕에 올라가시고 처마에 물이 새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손보시고 겨울에 유달리 추웠던 집을 따뜻하게 하려고 벽을 보강하시는 을 모두 직접 하셨었다. 집 안 작은 전구 하나부터 마당과 지붕까지 집안 곳곳을 모두 손보시던 아빠가 자리보전하고 누우시니 엄마가 혼자 관리하기에는 힘들었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씩 집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모두 허물고 다시 짖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건이 된다면 정말 엄마가 아빠를 돌보시기 좋게 생활하기 편하도록 모두 부시고 다시 지어드리고 싶은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대문에서 마당으로 내려가는 곳과 평상으로 올라가기 전에 놓인 낮은 계단은 모두 시멘트로 단을 맞춰 놓으셔서 휠체어가 이동하는데 괜찮을 듯하지만 높은 평상과 마루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노란색 장판을 걸친 무릎까지 올라오는 평상을 밟아 올라서면서 토요일마다 오시는 방문목욕에 아빠를 밖으로 옮길 때마다 여러 사람이 고생스러울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찬바람이 들어온다고 아빠가 오래전에 손보셨던 2중 창문으로 된 마루 문을 지나 안방 문을 열어본다. 드드득 사람의 손길을 오랜 시간 견딘 나무문이 잘 열리지 않고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렇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 바로 오른편에 병원 침대같이 높낮이가 조절되는 환자용 침대가 놓여있고 그곳에 아빠가 반듯이 누워 계신다. 반가운 마음에 “아빠!”라고 부르니 들어서는 나와 동생,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신다. 못 본 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시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데 한 달 반전과 비교해서 특별히 달라 보이지는 않으신다. 아니 오히려 볼살은 조금 붙으신 듯하고 혈색도 좋아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아빠! 나 누군지 알아? 우리 오랜만에 보는데” 하는데 멀뚱히 나를 쳐다본 후 동생을 보고 “혜진이” 하신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어 “나 누군지 몰라? 한 달 못 봤다고 딸내미도 잊어버린 거야?”하는데 살짝 미소를 머금으시며 “몰라” 하신다. 진짜 못 알아보시나 싶었는데 잠시 후에 “혜영이 머리했네?”라며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어주신다. “에이 나 몰라보는 줄 알았잖아.” 반가운 마음에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쥐어본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가족은 스킨쉽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내민 손이나 안아주는 행동에 깜짝 놀라 뒤로 흠칫! 물러설 때가 있는 나인데 아빠가 아프시고 나서는 스킨쉽이 많이 늘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가는 요즘이다. 아빠의 손은 뼈에 가죽만이 붙어 있는 듯 야위었지만 마주 잡은 손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따스함에 어릴 적부터 아빠에게 쌓아놓았던 서운하고 아픈 마음이 조금씩 녹아드는 느낌이 든다. ‘아! 이 분이 날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구나! 단지 표현의 방법을 몰랐을 뿐이구나.‘ 하는 생각에 콧등이 시큰 해진다. 그 순간 함께 손을 쥐여주는 아빠의 손아귀 힘이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