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 '남은 인생 10년'을 보고
혼자서 영화관을 찾았어요.
영화관을 혼자서 찾은 건 두 번째인 듯해요.
처음 영화관을 혼자 갔을 때는 주위를 신경 쓰느라 제대로 영화 감상을 하지 못했어요.
평소에도 남들의 시선에 예민한 저인지라 혼자서 영화관을 찾은 건 아닌가 보다 하고
그 뒤로 그런 기회를 가지 지를 않았네요.
아이들이 1박 2일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하루하고 반나절의 자유를 얻었지만 딱히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하룻밤 저녁이 여유롭고 조용하다는 것!
그리고 하루아침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에 무언가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볍기는
했네요.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들과 자주 다투고는 했거든요.
제가 아주 많이 부족한 부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나 봐요.
그렇게 온전하게 부여받은 시간을 집에서 뒹굴며 날려버리고 있을 때
동생이 지나가는 말로
"이럴 때 영화라고 한 편 보고 오지? 보고 싶은 거 없어?"
평소에 영화를 좋아했던 나이지만 그것도 여유를 잃고 무뎌진 지 오래된 듯했는데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맞다,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올까?.' 싶어 검색을 해봤어요.
검색으로 찾은 영화 중에 보고 싶은 영화는 딱 두 개로 좁혀지더군요.
일본 영화 '남은 인생 10년'과 '트랜스포머 6' 였어요.
두 가지의 영화 중에 조용한 멜로가 보고 싶어 선택하게 된 '남은 인생 10년'
영화의 내용은 불치병을 않고 10년의 시간을 선고받은 여주인공 마츠리와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음을 생각하는 카즈토의 이야기인데요.
저는 두 사람의 이야기보다 10년을 불안하게 딸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부모의 모습이 더
안타까웠어요.
아무래도 저도 엄마다 보니 그런 듯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안에 물음이 한 가지 계속 떠올랐는데요.
그건 '내가 아픈 것과 아이가 아픈 것 무엇이 더 아픈가?' 였어요.
평소에 저는 제가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어요.
이기적이고 내가 편안한 것이 우선인 저이기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의외로 결론은 그래도 아이가 아픈 걸 보는 것보다는 내가 아픈 게 낫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내가 아이들을 원망하고 미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건강히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구나 하고요.
단지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구나 하고요.
저의 친정아버지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갑자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부터 아버지의 건강이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계획이 있었거든요.
부모님 두 분에 대해 제가 너무나 모른다는 것을 어느 날 문득 깨닫고 두 분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하루이틀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 순간 아버지는 포도시 저를 기억하는 정도로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셨더라고요.
어릴 적 아버지는 저에게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본인의 의지를 더 많이 강압적으로 욱여넣으셨고 가끔 엄마와 우리에게 손찌검도 하셨으며 사랑표현은 가뭄에 콩 나듯 했지요.
밖에서는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유머러스해서 가족끼리 밥을 먹으러 단골집을 찾았을 때 사장님께서 " 아버지가 너무 재밌고 성격 좋으세요. 가족들이 너무 행복하겠다." 하셨는데 엄마를 비롯한 가족 모두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멀거니 앉아 있던 게 기억납니다.
아빠의 강압적 태도와 압력, 그리고 폭력은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래서 나의 모난 부분을 볼 때마다 부모님을 탓하고는 했는데요.
이제 그 마음을 조금씩 내려놔볼까 합니다.
가뭄에 콩 나듯 부족했던 애정표현을 짜내볼까 해요.
가령,
중학교는 걸어서 20여분 걸린 곳이었는데 가끔 늦잠을 자면 아빠가 오토바이로 데려다주시고는 했어요.
어찌 보면 사춘기시절 창피했을 법도 한데 아빠의 허리춤을 잡고 달리던 그때 참 좋았네요.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고 싶어 아침에 게으름을 부리기도 했었죠.
그리고 20대 초반에 난소에 큰 혹이 생겨 급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신 기억도 따뜻함으로 남아있네요.
그리고 보면 우리 가족은 유독 스킨십에 무감각했어요.
부모님부터 그런 표현을 잘하지 않으셨었죠.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쓰다듬어주고 엉덩이도 토닥여주고 안아주고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사춘기 아이들이 거부하지 뭐예요.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꽥! 하고 소리를 지르게 될 때가 있고 제 분에 못 이겨 행동할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땐 '내가 아빠를 닮았네 그것도 가장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을.'이라며 자책하고는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아빠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제는 물어도 대답 못할 아빠지만 친정집을 찾을 때마다 웃어주시고 반가워해 주시는 모습에 감사한 요즘이네요.
힘없이 누워계시는 모습에 손이라도 꼭 잡아드리고 싶은 건 그런 저의 마음이지 싶습니다.
하루하루 귀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을까요?
소중한 그날들이 아이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도록
감사함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오늘도 노력하는 부모가 되고자 하네요.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어릴 적 마냥 사랑스럽던 아이들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순간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