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펑펑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7월 3일 엄마는 엄마를 잃었습니다.

by 쏘일

2023년 7월 3일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올해 아흔둘. 90년이라는 시간을 사셨으니 지나가는 누군가는 호상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죽음에 호상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아니 아니

할머니의 삶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호상이라 말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엄마에게 듣기로

막내 이모가 세상에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외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고 해요.

일곱 명의 형제자매 중 세 번째인 엄마가 6살쯤 되었을 때라고 하니

할머니도 젊디 젊은 20~30대의 어린 나이였지 싶은데요.

그나마 살만했던 집안에서 엄마의 큰아버지 되시는 분이 아편에 빠져 남은 살림을 모두 탕진해 버리셨다는

드라마나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을 것 같은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지요.

현재의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어리디 어린 나이에 일곱 명의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셨으니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제가 국민학교 5~6학년 때의 모습인 듯해요.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 제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답니다.)

무안에서 완도로 시집을 오신 엄마는 친정을 거의 다니지 못하셨던 듯합니다.

왜냐하면 국민학교 고학년쯤 이전에는 외할머니의 기억이 저에게 없기 때문이에요.

친할머니는 저에게 다정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가끔 그리워지는 존재인데,

엄마에게 전해 들은 친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도 이혼사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부갈등이니 그 시절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야 말해 무엇할까요!



국민학교 때 처음 뵌 할머니는 항상 바빴던 듯해요.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신 적도 친할머니처럼 얼굴을 쓸어주신 적도 없고 이모들과 삼촌들이 많으니 많은 외사촌들 중 여자아이 하나 정도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저에게도 외할머니에 대한 마음은 친할머니에 대한 마음과는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일까요? 어릴 적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더 많지 않아요.

뜨문뜨문 기억을 더듬어가는 외갓집에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음이 아프고 죄송스러워지네요.



외할머니는 저를 볼 때마다 '엄마에게 잘해라.' 당부를 하시고는 했는데 몸이 아파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엄마가 외할머니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남에게 피해를 줄까?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당할까?

어디서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지적질을 해대는 엄마가 자라면서 너무나 싫었는데

혼자 일곱 남매를 키우셔야 했던 할머니의 영향이 아니었을까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골집에서 혼자 사셨던 할머니!

몸이 아파 딸네집에 와 계시면서도 불편해서 빨리 시골로 가고 싶다고 하시던 할머니!

사위 눈치 보느라 딸네집이 바늘방석 같다던 할머니!

자식들이든 누구든 신세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셨던 할머니!

가슴에 아프게 묻은 큰 이모와 큰외삼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신 할머니!

멀리 사는 자식들 와달라 못하고 보고 싶다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하신 할머니!



알츠하이머로 자리에 누워계신 아빠를 돌보는 엄마는 코로나와 아빠로 인해 3년여를 할머니를 찾아뵙지 못했었어요.

일주일에 몇 번씩 통화하는 두 분이지만 어느 날 코로나 예방접종 후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는 이웃분의 말씀을 전해 듣고 찾아가지 못하는 걸 많이 안타까워하셨는데

하루 오빠에게 아빠를 맡기고 엄마를 모시고 외갓집을 얼마 전에 찾았었어요.

못본새 할머니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계셨어요.

가지런했던 이는 모두 빠져 듬성듬성 몇 개만이 남아 있었고 살집이 있어 보였지만 식사는 많이 하시지 못하고 계셨거든요.

가지고 간 죽을 한 그릇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는 모습에

먼저 간 큰딸이 눈에 보인다며 찾으시는 모습에

엄마는 아주 많이 속상해하며 발길을 돌리셔야 했어요.

그렇게 할머니를 뵙고 온 것이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돌아가시기 이틀 전부터 자식들에게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고 본인은 잘 있으니 걱정말라셨다는

할머니!

그렇게 전화하시고 혹여나 자식들이 올까 문지방에서 밖을 내다본 채로 돌아가셨다는 할머니!

그 외로운 죽음도 너무 슬프고 안타깝지만

무엇보다

이기적인 저는

엄마를 잃은 엄마가 더 걱정이 됩니다.


괜찮냐는 물음에 애써 담담하게

"아빠도 저러고 있고 할머니도 신경 못쓰고 답답했는데 한쪽이라도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라시던 엄마!

강함으로 포장된 그 뒷모습이 슬픔이되 삶의 희망을 놓는 것은 아니기를

마음속을 그 누구에게도 잘 털어놓지 못하고 살아온 엄마라 더 걱정이 됩니다.



아빠를 혼자 둘 수도 어디 맡길 만한 곳도 없어 오늘은 오빠가 새언니와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내일 엄마를 모시고 장례식장을 찾기로 했습니다.

저는 엄마가 장례식장에서 많이 많이 우셨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아픔과 슬픔, 죄책감 모두모두 털어내도록 펑펑 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와 오빠를 먼저 보내고 큰딸 역할하느라 동생들 눈치 보느라 마음속에 또 꼭꼭 감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7월 3일

저희 엄마는

엄마를 잃었습니다.

2023년 7월 4일 그리고 5일

엄마가 엄마를 잘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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