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여행처럼

그래 그렇게 하루하루 여행처럼 살자!

by 쏘일

오늘도 나는 핸드폰을 열어 3월 한 달 동안의 나의 기록들을 살펴본다. 바닷가에서 맨발로 두 손에 신발을 들고 손을 번쩍 치켜 올린 사진이라든가 유채꽃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함께 한 언니들과 손가락으로 V를 만들며 웃고 있는 사진, 알록달록 예뻤던 커피숍 등 한 달 반 동안의 제주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제주도를 걸을 때의 추억들이 생각나 흐뭇하다.

내 일상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세 아이의 엄마이고 한 사람의 아내이며 부모님들의 딸이다.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짜증을 내는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들과 다툴 때도 많고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내 주위를 둘러싼 상황들은 변화가 없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내 태도에는 조금 변화가 있다. 먼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짜증이 올라와도 한번이라도 더 참고 좋게 말하려고 노력을 한다. 물론 그게 매번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 일을 그만두고 다녀온 여행이라 집에서 살림을하고 있지만 하루를 열심히 살아보려 새벽 기상을 다시 시작하고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기초부터 듣는 강의가 재미있고 앞으로 더 성장할 내가 기대된다. 타지로 일을 간 신랑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아빠는 여전히 자리보전 중이지만 엄마가 지금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틈틈이 운동도 하시고 먹을 것도 잘 챙겨드시는 것 같아 안심된다.


답답한 마음에 도망가듯 출발했던 여행이라 그 여행속에서 답을 찾고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답은 내 안에 있었던 것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여행이 실속 없는 시간낭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좋은 분들을 만났고 즐거운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문득문득 떠나고 싶은 유혹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아침에 아이들의 입이 삐죽 나와서 등교를 했다. 어제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주문해 줬는데 급하게 주문하다보니 잘못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제 떡볶이가 아닌 싫어하는 마라 떡볶이를 주문해 버린 것이다. 항의하는 아이들에게 “그렇다고 음식을 다 버릴 수는 없잖아. 미안하지만 씻어서 국물 떡볶이에 찍어 먹으면 안될까?”하고 전화를 끊었다. 약속이 있어 밤 늦은 시간 귀가를 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아침에 보니 다들 입술이 대발이나 나와있다. “떡볶이 먹고 싶었는데. 엄마 미워!” 달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디지털 배움터에 신청해 놓았던 챗GPT로 그리는 그림 수업을 듣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제주의 푸른 바다가 생각났다. ‘이럴 땐 잠깐이라도 다녀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밥그릇을 앞에 두고 한참을 추억에 젖어 눈을 감고 있었다. 나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힘들었던 장기간의 여행이었는데 그렇게 다녀온 여행으로 더욱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는게 아이러니하다. 여행은 할수록 더 여행을 부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서도 영어는 포기했다며 고개를 젓던 나인데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다시 떠나고 싶어서 였다. 제주의 푸른 바다는 실컷 봤으니 이젠 해외를 봐야 하지 않겠냐는 계획을 잡았다. 유럽여행을 꿈꾸게 되면서 시작한 영어 공부는 이제 기초 중의 기초를 배우고 있지만 말이다.

문득 그리고 보면 꼭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인가? 묻게 된다. 일상속에서 힘겨움에 나에게 휴식같은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도 여행이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도 여행이고 나만을 위한 내 공간으로 꾸며진 책상 위에 앉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넓게 보면 여행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을 꼭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찾을 필요는 없는 듯 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도망치듯 다녀온 여행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자꾸 떠나고 싶어하는 나에게 일상 속에서 찾아보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책장 위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읽지 못한 책들이 내 여행지고 나의 시간을 기다리는 노트들이 내 패스포트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여행하듯 즐기며 살다 보면 내 삶은 풍요로워지겠지. 그리고 어느 순간 유럽여행이라는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내가 저기 어딘가 서 있을 것이다. 세상 든든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당당한 웃음으로 내게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나는 오늘도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많은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그녀를 빨리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