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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Dec 26. 2020

아홉수가 온다

웹툰 <아홉수 우리들>을 보다가

다음주면 29살이 된다. 곧 20대 말미에 설 나에게 언니오빠들이 말했다. 

"아홉수를 조심해."


서른도 있고, 서른하나도 있는데 왜 하고 많은 나이 중에서 '아홉'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을까? 주변 누군가는 본인 29살 때 사고도 겪고 파혼도 하고 악재가 많았다며 치를 떨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일도 없던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도 했다. 

정말 아홉수가 있을까?  

'신을 나를 미워한다'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즐겨보는 웹툰 중에 <아홉수 우리들>이란 작품이 있다. '우리'라는 이름을 가진 29살의 세 친구가 등장한다. 


<아홉수 우리들>에서 공시생 n년차로 등장하는 김우리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바로 '마시멜로 걸'이다. 어릴 때 한번쯤 읽어본 도서 <마시멜로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처럼 김우리는 인내하고 마시멜로를 잔뜩 모으는 유형이다. 김우리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20대를 온전히 바친 자신을 보며 묻는다. 

"내 인생은 도대체 언제 시작되는 걸까요?"


29살의 봉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여러가지 악재를 겪는다. 백마탄 왕자인 줄 알았던, 수년간 시간을 보냈던 남자친구가 이별을 말했고 비정규직에다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열심히 다녔던 회사에서 잘린다. 박봉에도 매일같이 야근하고 궂은 일도 마다 않고 했는데 열심히 한 나에게 왜 그러냐고 항의한 봉우리에게 상사는 말한다. 모두가 열심히 한다고. 특별한게 아니라고. '신은 나를 미워한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봉우리의 독백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들 나를 필요없어 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중략)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봐.

일도, 사랑도...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벌을 받는 건가 봐.

(중략)

신이 있다면 분명히 나를 미워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차우리는 전형적인 K-장녀다. 철 없고 능력 없는 엄마 때문에, 장손을 최고로 아시는 할머니 때문에 항상 억울하게 산다. 무능한 엄마와 남동생을 위해 가장 노릇을 하고 돈이 최고라고 여기며 산다. 연애도 당연히 사치일 뿐. 그럼에도 예쁜 립스틱을 보며 엄마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한다. 늘 서운하게 하는 엄마이지만.

"나만 또 엄마 편이지?"


30대가 되기 직전 뭔가 이뤄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내 삶의 방향도 결정하지 못한, 30년간 뭐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스물아홉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른이 되기 전 느끼는 조급함과 불안감을 '아홉수'란 단어로 정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연재 중인 작품이다. 세 우리들이 각자의 행복을 찾아서 잘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설문조사를 참여할 때 연령대를 묻는 문항이 있으면 고민이 된다. 분명 20대는 맞지만 스물셋 동생보다는 서른셋 언니와 더 비슷한 고민을 하는데, 곧 서른이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20대로 체크를 한다. 스물아홉이 되는 나는 과도기에 있다. 30대는 아니지만 곧 20대 반열을 떠나야 하는 존재 말이다.


나의 20대를 돌아본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지난 날을 되짚어본다. 

내가 꿈꿨던 현재는 어떤 모습이었지?


서른이 되면 소형차 한 대를 소유하고 오피스텔 전셋값 정도는 모아뒀겠지. 직장생활도 오래해서 괜찮은 연봉을 받고 멋있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거야. 멋진 애인과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있고 화장품도 좋은 브랜드 제품을 쓰겠지. 


현재의 내 모습은 어떠냐면 자동차 유지비 걱정에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고 치솟는 집값에 다음 전셋집을 걱정한다. 대학생 때는 한껏 꾸미고 다니던 내가 어느덧 구두를 신은지도 오래 됐고 5년 넘게 직장을 다녔지만 여전히 내 커리어는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 남친과의 레스토랑? 결혼자금이 먼저다.


그렇다고 난 불행한가. 열심히 산 만큼 항상 보답받는건 아니었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행복하기 위해 애썼다. 모두가 열심히 사니까 특별한 게 아니라고? 틀렸다. 특별하다. 성실함도 능력이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인생일 수 있을까. 


적지만 5년간 모은 돈, 소폭이지만 신입때보다 오른 연봉, 항상 좋은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남자친구, 다행히 별 문제 없는 건강, 특별하게 좋아하는 건 없어도 꾸준히 즐기는 취미생활... 소소하지만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인생이라 좋다.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냐고? 절대 네버. 


이 시대의 봉우리, 차우리, 김우리에게 말하고 싶다. 

30년간 열심히 사느라 고생했다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지는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고.

꼭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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