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인생 6년차 김 선생, 집을 꿈 꾼다
"이번에 집 샀어"
신년인사 때문에 간만에 대학동창에게 연락했더니 주택매매 근황을 듣게 됐다. 좀 놀랐다. 뉴스에서만 듣던 '영끌 20대'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위치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가격대도 비교적 적었긴 하지만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서 집을 샀다고 한다.
결혼계획을 잡고 있는 친구는 다른 얘길 했다. 결혼식은 최소한으로 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신혼집 마련할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전셋값이 무섭게 올라서 아파트는 무리고 투룸 빌라에서 시작할까 한다면서 집을 사게 되더라도 평생 대출금 갚을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하다는 말까지 했다.
하루는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았다. 백반을 하나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아저씨 두 분이 계셨다. 두 분의 이야기가 나에게까지 넘어와서 듣게 됐다. 집값이 너무 올랐네, 우리집은 이정도 올랐네, 친구네는 억단위로 올랐네 하며 집값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치셨다.
작년 최고의 화두는 뭐였을까?
코로나19 다음으로 '부동산'이었던 것 같다.
아마 20대 사회초년생부터 80대 노부부까지 전 연령층을 관통한 키워드가 아닐까.
(어쩌면 10대도 부동산에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다. 친구가 임대아파트에 사는지, 빌라에 사는지 물어본다고 하니 말이다. 세상 참.)
5년간의 직장생활은 부동산과 관련이 깊었다. 덕분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부동산 정보를 접했고 전국각지의 모델하우스를 다니기도 했다. 회사를 막 다니기 시작할 당시 먼저 취직한 나에게 친구들이 "무슨 일해?"라고 물었다. 신규분양 아파트를 홍보한다고 설명했지만 20대 중반이던 그때 친구들은 부동산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지만 어느새 달라진 것이다. 자취방을 어디에 구할지 고민하던 친구들이 어느덧 집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방이 아니라 집을!
장기간 자취를 하면서 어느덧 나에겐 집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곳은 떠난지 너무 오래돼 '집'의 개념을 잃은지 오래다. 이미 내 방은 라면박스로 가득 채워져 있고 부모님도 오랜만에 온 나를 손님처럼 대하신다. 하루는 퇴사를 하고 일주일 넘게 고향집에 머무르려고 하니 "너 잘 곳도 없고..."라며 부담스러워 하셨다. (안 내려가면 엄청 서운해하시면서ㅜ.ㅜ)
그렇다고 서울 자취방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입신고도 되어 있고 세대주니까 "집이 어디에요?"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서울 집을 말하긴 한다. 하지만 안식처, 보금자리 같은 단어와는 연결이 잘 안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년마다 옮겨 다녀서. 익숙해질만 하면 이사하고 익숙해질만 하면 또 이사하고... 결국 한 곳도 편안하고 익숙해지지 못 한다.
공간 자체도 문제다. 스물 한살, 성적 미달로 기숙사를 벗어나 자취를 시작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난 자취방에서 살았다. 침대에 누우면 현관문과 신발장이 보이고, 행거 맞은 편에 주방이 있고, 빨래건조대를 펼치면 공간이 순식간에 좁아지는 그런 '방'.
통장을 보면 6~7평 짜리 이런 방조차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오래 살고 싶진 않다. 그나마 코로나19 이전에는 약속을 잔뜩 잡아서 집에 붙어있을 시간을 만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억지로라도 집콕을 해야하니 우울감이 크다. 고립된 기분..
꽤 다양한 주거공간을 봤다. 어릴적 부모님이 하시던 경양식 음식점에 딸린 집에도 살아봤고, 방 한칸 있는 빌라에도 네 식구가 옹기종기 살아봤고, 18평 오래된 주공아파트에도 살았고, 30평대 아파트도 살았다. 홀로서기 이후에는 고시텔에도 살았었고 자취방도 살아봤고 오피스텔에서도 살았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면서 신축 아파트를 여럿 봤고 몇 십억짜리 강남아파트도 가봤고 유명 회장님들이 소유한 몇 백억짜리 집도 가봤다.
그렇다면,
자취방이 집으로 안 느껴진다면,
내가 생각하는 '집'은 뭘까?
몇 년째 원룸에서만 살다보니 투룸을 갖고 싶단 꿈에 빠진다. 아파트도 안 바란다. 침실이 있고, 복도에 가까운 거실이 있고, 남는 방에는 듀얼모니터가 있는 컴퓨터 책상을 놓고... 침대에 누워서 더이상 신발장을 보지 않아도 되고, 음식할때 옷에 냄새 밸까봐 걱정할 필요 없는, 좁아도 공간이 분리돼 있는 '집' 말이다.
중간 사이즈의 화분을 두고 싶다. 요즘 집에서 기를만한 화분, 이른바 반려식물을 추천해주는 인스타를 팔로우해 보는 중이다. 시원한 느낌의 몬스테라, 앙증맞은 열매가 열리는 사계귤, 작은 나무를 키우는 듯한 파키라 등 눈길이 가는 식물이 참 많다. 집안에 이런 식물 하나만 둬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원룸에서는 다육이같이 작은 화분 밖에 둘 수 없어서 아쉽다.
옷을 햇볕에 말리고 싶다. 매번 자취방 한가운데 빨랫대가 펼쳐져 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도 싫고 빨래를 갤때 뽀송뽀송한 느낌이 그립다. 섬유유연제를 아무리 넣어도 기분 좋은 빨래 향을 맡을 수가 없다. 테라스까지 어렵다면 침대에 누웠을때 빨래가 안 보였으면 좋겠다. 꼭 제습기를 함께 넣어놓고 뽀송뽀송 옷을 말릴 수 있는 방을 만들어야지.
작은 쇼파를 마련하고 싶다. TV 앞에 쇼파를 놓고 그 앞에 티테이블을 둔다. 쇼파 옆에는 장 스텐드까지 하나 세워두면... 얼마나 좋을까. 밥 먹으면서 TV를 보기도 하고 스텐드를 켜놓고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침대 대신 멀티공간이 생기고 침대는 드디어 제 역할을 찾게 되는 거다. 퍼펙트!
난 집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