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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Nov 11. 2020

영화<소공녀>처럼 차가운 방 안에서

아무리 그래도 방에 고드름이 어는 건 좀 너무하잖아

배우 이솜이 열연한 영화 <소공녀>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돈이 없는 미소(이솜 분)와 한솔(안재홍 분) 커플이 미소의 집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달아올라 둘은 옷을 벗어젖히는데 이런, 방이 너무 춥다. 그래서 둘은 하려던 걸(?) 포기하고 후다닥 패딩까지 껴입은 채 서로를 껴안는다. 그 장면을 보자 '신박한데?'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 너무 추우면 감히 옷을 벗을 수 없지'라며 격하게 공감했다.


참신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오랜 기간 자취를 하다 보면 고시원부터 5평짜리 원룸, 분리형 원룸 등 다양한 주거공간을 만난다. 그중에서도 자취의 로망이라고 하는 복층 구조의 오피스텔에서 2년간 살았다. 처음 그 집을 소개받았을 때 구조가 참 마음에 들었다. 당시 살던 집이 6평짜리의 작은 원룸이었는데 그에 반해 복층 집은 7~8평으로 비교적 더 큰 편이었고 층고가 높아서 더 넓게 느껴졌다. 게다가 집 안에 들어오는 햇볕을 굉장히 중요시해서 창이 큰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부수적인 것들에 관해 설명을 들은 후 계약을 했다. 하지만 도시가스가 아닌 LP가스를 쓴다는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LP가스를 쓰는구나. 특이하네. 뭐 다른가?


입주하고 처음엔 대만족했다. 원룸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로운 공간을 맘껏 즐겼고 매일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는 아침을 맞았다. 전에는 친구들이 놀러 오면 꾸역꾸역 껴서 잤는데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이사하고서 5명의 친구가 놀러 왔는데도 하나도 안 좁게 느껴졌으니까.


얼마 안 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가을이 오자 집안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바닥에 찬 기운만 가실 정도로 약하게 보일러를 틀었는데 7만 원 정도가 나왔다. 엄마는 그 얘길 듣더니 LP가스는 원래 비싸다고 하셨다. 그제야 내 실수를 알 수 있었다. 평소에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고 옷을 가볍게 입고 자는 걸 선호하는데 '내 피 같은 돈...'이라며 보일러를 더 세게 틀지 않고 옷을 껴입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이 유난히도 추웠다. 뉴스에서는 평년보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는 기상캐스터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초겨울에는 보일러를 약하게 틀 수 없었다. 보일러가 낡아서 약한 온도로 틀면 작동이 안 됐기 때문에 냉골에서 잘 수 없어서 온도를 올렸다. 난방비는 기본 10만 원대였다. 


사실 10만 원 넘는 돈이라도 따뜻하게만 보낼 수 있다면 큰 불만이 없었을 거다. 그런데 그 낡은 보일러는 겨울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5만 원어치 보일러를 틀어놔도 높은 천장고와 큰 창문 때문인지 집안에서 종일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창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왔고 보일러를 켜도 방바닥은 발만 디딜 수 있을 수준으로만 온도를 유지했다. 


1박2일 잠자리 복불복 재미있게 봤는데 경험할 줄이야ㅠ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멤버들이 추운 날 야외취침 후 "살았어!"라고 말하는 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린 코를 손으로 움켜쥐며 다행히 무사히 깨어났다고 말했다. 난 분명히 실내에서 자고 있는데 야외취침의 기분을 느끼다니.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거 아냐?


이대로 살 수 없어서 난방용품을 샀다. 난방텐트, 전기난로, 전기장판, 수면잠옷, 수면양말 등을 구비했다. 겨울에는 난방텐트 안에서 살았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난방텐트 안까지 찬 바람이 들어와서 수면잠옷이 필수였고 난방텐트 위는 패딩으로 감싸야 했지만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난방텐트를 열면 겨울왕국이 펼쳐졌다.


그래도 집인데... 추위를 많이 타는 게 아니냐는 지인의 질문에 딱 한 마디만 했다. "집안에서 고드름도 봤어요." 당시 서울 기온이 많이 낮다는 뉴스를 보고 잠깐 고향 집으로 피신하러 갔다. 그동안 수도관이 얼까 봐 물이 조르륵 흐를 만큼 틀어놓고 보일러도 켠 채 갔다. 따뜻한 주말을 보내고 자취방으로 귀가했는데 충격을 받아 말을 잇지 못했다. 주방 싱크대 앞 바닥에 큰 얼음이 형성돼 있었던 것. 윗집에서 물이 샌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방 천장에서 뚝뚝 떨어진 물이 바닥에 얼음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동굴의 종유석과 같았다.


복층 로망? 달달하지만은 않더이다.


그 이후 작지만 따뜻한 원룸을 선택했다. 복층 구조는 공간이 분리되고 천장고가 넓어 탁 트여 보이는 장점이 있어서 지금도 눈길이 간다. 하지만 집을 알아볼 때 복층 구조의 오피스텔은 일단 경계부터 하게 됐다. LP가스를 써서일까, 아니면 낡은 보일러 때문일까. 원인은 모르겠지만 복층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생겨버렸다. 더는 생존이 어려운 집은 만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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