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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Apr 01. 2021

비 오는 날, 서강대교 위에서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서강대교를 보면 비참한 한 장면이 떠오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우산 없이 대교를 건너는 여자 하나.



지방 모 대학교를 다닌 나는 2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학교와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있는 한 건물에서 상경하기 전까지 3년간 살았다. 그곳은 독특하게 연세를 내는데 1년 연세가 360만 원 정도였다. 다소 오래된 건물이긴 하지만 주인 할아버지가 관리를 잘 하셔서 불편함 없이 지냈고 원룸치곤 넓었다.


그러다가 4학년 여름방학, 서울에 왔다. 토익공부 하겠다고 올라왔다가 취업이 되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서울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몇개월 간의 고시원 생활을 끝내고 정직원이 되는 시기에 맞춰 집을 구했다. 대학생때는 그냥 학교와의 거리만 따져서 건물을 고른 뒤, 선배한테 한번 확인 작업 후 계약을 했는데 서울에서는 어떤 식으로 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부모님도 거의 평생을 지방에서만 사셔서 서울의 원룸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고 하셨다. 


방법은 발품을 파는 수 밖에. 


평일에는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방을 볼 시간이 없고, 일요일은 휴무인 부동산이 많아서 거의 한달 가까이를 집 보러 다녔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니 회사 선배들이 추천해주는 지역 위주로만 봤는데도 말이다. 많은 방을 보고도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다. 가격.


서울 집값이 엄청 비싸다는 건 알았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비쌌다. 이전보다 면적은 훨씬 좁아졌는데 보증금이며 월세가 너무 높았다. 당시 내 초봉은 1800만원. 40~50만원대 월세를 내고 관리비와 공과금을 내고... 월급의 1/3 이상을 주거비로 써야 한다. 월세를 낮추고 싶어도 보증금을 몇 천만원씩 인상해야 하는데 도저히 엄마한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다. 딱 지금 고향친구들이 내 오피스텔 보증금을 듣고 놀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지역은 이 금액에 이만한 집에서는 살 수 있는데... 그 돈의 2배로도 택도 없다고?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은게 당연한건지 이해가 안되니 쉽사리 집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한달간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어려웠고 조금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을 때다. 그날도 방을 보러 갔는데 원하던 곳이 아니었고 고시원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이었다. 상수동에 있던 고시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 광흥창역에서 환승해야 했다. 며칠간 방 보러 다니느라 쉬지 못한데다 마음에 드는 곳도 없어서 기운이 없었다.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멍- 때리고 있었다.


띵동. 이번역은 광흥창역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 정거장을 놓쳤다.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걸어갈 요량으로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버스는 곧장 서강대교로 진입했다. 당황스러웠다. 부랴부랴 하차 벨을 울리고 내리니 국회의사당이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아직 서울 지리도 모르고 지도 보는 방법도 잘 모르고. 대단한 길치인 난 다시 광흥창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서강대교를 건넜다. 버스정거장 사이가 이렇게나 멀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조금만 걸으면 광흥창역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택시를 안 탔을까...ㅠ 아직 의문) 서강대교 보도는 매우 좁아서 두 사람이 지나다기에도 벅찼다. 그러다보니 달리는 자동차가 가까이 느껴졌다. 쏜살같이 달리는 차, 빵빵 울리는 클락션,, 무서웠다. 


그때였다. 그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주 약하게 내리는 비였지만 우산이 없어서 그냥 비를 맞았다. 꽤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서강대교가 끝이 없이 펼쳐졌다.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예산에 맞는 집은 안 보이고 서울 지리는 어렵고 그 와중에 길을 잃어서 비 맞으며 귀가하는 꼴이라니. 비참했다.


결국 더 이상 집을 알아보는 것을 포기하고 그 중에서 제일 괜찮았던 것으로 충동적으로 계약을 했다. 월급의 대부분을 갖다 바쳐야 하는 월셋방이었지만 이보다 마음에 드는 방을 찾을 순 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울살이 5년이 넘은 지금도 내 예산에 좋은 방은 없다. 그저 포기하고 선택하는 것 뿐.


포기하지 않는 삶도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걸 몰랐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갔던 서강대교 뷰 카페. 많은 생각에 잠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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