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조차도 지루함을 해결해주지 못하게 될 때가 있잖아. 그럴 땐 서둘러서 뭔가 다른 생각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버리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인 것 같아.
오늘은 유독 그런 순간이 일찍 찾아왔어. 그래서 듣던 음악도 꺼버리고 쉬어갈 만한 생각거리를 뒤적였지. 그러다 올 연말은 어떻게 포근하게 보낼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어.
우선 비행기를 타야겠지.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쯤 달리면 도착이야. 가는 길에는 검은 봉지 한가득 귤을 사 가야지. 방에 대충 짐을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릎담요 하나를 덮은 채 누웠다, 앉았다 자세를 마구 바꿔가며 하루 종일 귤이나 까고 책을 읽는 거야. 멀리 있는 사이 읽고 싶은 책이 꽤 쌓였거든. 그러다 해가 지면, 책을 덮고는 여행을 마치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어디서 왔어요?'같은 뻔하고 시답잖은 얘기로 시작해 막걸리 한잔 하며 밤늦게까지 수다나 떠는 거야.
날이 밝으면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곳으로 방을 옮길 거야. 연말이면 거기 있는 손바닥만 한 연갈색 방명록에 뭐든 끄적여온 게 벌써 햇수로 4년이 됐네. 그리곤 나가서 하루 종일 바다나 보는 거지. 해변 앞 정자에 가만히 앉아 철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수평선 위로 섬을 바라보기도 하고, 바닷물이 빠지면 넓어진 해변을 느린 걸음으로 거닐기도 하고. 작게 강아솔의 노래를 틀어두고 형편없이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말이야. 이 정도면 완벽한 연말 아닐까. 벌써 행복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