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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쏘킴 May 08. 2020

나의 로망, 나의  guitar

나도 작가다 공모전

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듣게 된 기타 연주.

그 뒤로 나에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된 기타 배우기.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용돈을 쪼개서 기타를 살 수도, 배울 시간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 그때 돈 벌어서 기타 배워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퇴근하고 기타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멋진 직장 생활을 기대했었는데 막상 마주한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불규칙한 퇴근 시간과 온종일 회사에 시달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미 곯아떨어져 버리는 저질 체력으로 인해 기타를 살 생각도, 배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일을 하면서 회사와 집만 반복하던 난 회사를 그만두고 미뤄뒀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독학으로도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일단 기타부터 구매했다.

기타에 ‘기’자도 모르는 내가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한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내 품에 착 들어오는 기타. ‘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기타를 결제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책도 보고 영상도 보며 줄을 튕겨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쇠로 된 줄을 손끝으로 누르기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리가 고운 기타 선율이 아닌 틱틱거리는 소리만 났다.

그런 내 기타 소리를 들은 엄만 시끄럽다며 결국엔 집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독학을 포기한 채 기타를 방에 고이 모셔두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기타를 샀다는 걸 살짝 잊어 갈 때 즈음 친구가 동호회를 가보자고 먼저 얘기했다.

자신도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며 함께 가보자고.

사람 북적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학교 다니면서 동아리 활동도 잘 안 한 내가 동호회 활동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무료로 기타를 가르쳐 준다는 말에 동호회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간 동호회는 예상대로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친절하게 기타도 가르쳐주고 나 혼자 연습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타를 치면서 엄마의 잔소리를 더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거의 매일 가서 연습하곤 했었다.

처음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기 전까진 아프다는 선생님 말씀에 얼른 굳은살이 생기길 바랐다.

굳은살이 생기기 전까지는 왼손에 뭘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는데 1달 정도 지나자 손끝에 굳은살이 생기고 기타 소리도 점점 선명해졌다.

그렇게 동호회에 열심히 나가서 기타를 배운지 3달.

쉬운 코드로 이루어진 곡들은 혼자서도 연주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연주 할 수 있는 곡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제법 연주가 가능해지자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같이 모여 공연을 해보자고 했다.

사람들 앞에서 연주라니, 그것도 직접 노래를 하면서?!!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술을 먹지 않고는 노래방에서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는 내가 맨정신에 노래한다는 것은 내 버킷리스트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같이 기타를 배우면서 친해진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공연에 할 곡들을 고르고, 순서는 어떻게 할지, 옷은 어떻게 할지 하나하나 우리가 직접 준비를 했다.

기타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베이스도 넣고, 건반도 합쳐지니 그럴싸한 밴드가 되었다.

중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배워서 내가 기타를 치지 않는 곡엔 건반 연주도 맡았다.

어릴 때 배워뒀던 피아노가 이렇게 쓰일 줄 몰랐다.

다시 취업하고 나서도 퇴근하면 바로 연습실로 달려가서 연습했다.

늦은 시간까지 연습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맨정신에 노래방 가서 노래 연습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실력이 되었다.

이대로만 하면 무리 없이 공연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 당일. 공연장 빼곡히 차 있는 사람들을 보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틀리면 어쩌나,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는 걱정을 할 틈도 없었다.

건반을 틀리지 않기 위해 거기에 신경을 쓰고, 기타 연주에 신경을 쓰다 보니 어느새 공연이 끝나있었다.

내가 노래를 어떻게 했는지, 연주는 안 틀렸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내 인생에서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이미 끝이 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 나의 기타는 내 방 한쪽에 고이 모셔져 있다.

코드도 가물가물하고 손끝에 굳은살도 다 없어졌다.

이제 다시 기타를 잡으면 손끝이 아프다.

엄마는 기타 이제 안 칠 거면 팔든지 버리든지 하라고 얘기한다.

그럴 때마다 칠 거라고 바득바득 우기면서 가방에서 스-윽 한번 꺼내 기타 줄을 튕겨보곤 한다.

아마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며 노래 부를 일은 없겠지만.

(그걸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절대로)

그래도 내 로망과 같은 기타를 쉽게 없애버릴 순 없을 것 같다.

언젠가 손끝에 다시 굳은살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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