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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쏘킴 Aug 11. 2021

Candle

하나의 성냥, 하나의 바람

눈이 소복 길가를 덮은 새벽.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동네가 경찰차와 구급차의 번쩍이는 등 때문에 골목이 환해졌다.

빠르게 집 입구에 노란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사람을 실어 구급차로 향했다.

시끄러운 소란에 동네 주민들과 기자들까지 골목 어귀가 북적거렸다.


  “오늘 새벽 AN 그룹 유 회장 일가족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유 회장은 회사 재정이 어려워진 것을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 도착했을 당시 유 회장과 그 부인은 이미 사망한 뒤였고 유 회장의 외동딸만 지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소영이 병원에서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 뉴스에서 한 여기자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지만,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탓에 주변 모든 소음이 웅웅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눈을 몇 번 느리게 깜빡거리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소영이 다시 깨어났을 때 곁에 작은아버지가 화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작은아버지는 소영이 깨어난 걸 보고 놀란 기색도 없이 병실 밖으로 나가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가 진찰을 끝내고 작은아버지와 뭔가 얘기하는 걸 봤지만 소영의 귀에는 그저 웅웅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의사가 나가고 작은아버지는 소영에게 말했다.

 

  “일주일 정도 입원하는 게 좋겠다는구나. 입원해 있는 동안 네가 지낼 곳 알아보마.”

  “...”

  “네 부모 장례식은 따로 안 했다. 장례식 해봐야 빚쟁이들 찾아와 난리 칠 테고 조용히 화장해서 납골당에 뒀으니 퇴원하고 가봐라.”


멍하니 앉아있던 소영이 부모라는 단어에 작은아버지를 바라봤다.

17살, 아직은 소영에게 장례식이라는 단어는 너무 낯설었다.

그런 소영을 배려할 마음이 없는 작은아버지는 자신이 할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무하다 생각 마라. 네 아버지가 진 빚 해결하느라 나도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게 아니야.”

  “네.”

  “그럼 퇴원하는 날 오마. 너도 어린애 아니니 혼자 있을 수 있겠지.”

  

작은아버지는 소영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병실을 나갔다.


일주일 후 약속대로 작은아버지가 소영을 데리러 왔다.

작은아버지는 병원 앞에서 소영에게 종이를 건넸다.

종이 안에는 주소와 비밀번호가 적혀있었다.


  “네가 지낼 곳이다. 원룸이니까 너 혼자 지내는 데 문제없을 거다.”

  “...”

  “당분간은 정신과 치료도 받는 게 좋다고 하니 일단 좀 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네. 저…."

    

소영이 작은아버지를 부르자 휴대폰만 보며 얘기하던 작은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소영을 바라봤다.

작은아버지가 무서워 바라보지도 못한 채 땅만 바라보며 소영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엄마랑 아빠 있는 곳은…."

     

작은아버지는 귀찮다는 듯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꾸했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고 납골당 주소는 휴대폰으로 보내주마.”

  “네….”

  “집까지 혼자 갈 수 있겠지? 필요한 건 대충 사다 놨는데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이걸로 사서 써라.”     


작은아버지가 건네는 돈을 받은 소영은 택시에 올라탔다.

소영은 택시 안에서 작은아버지가 알려준 주소가 아닌 자신의 부모님과 살던 집 주소를 말했다.     


택시에서 내린 소영은 한참을 집 앞에 서 있다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살던 집이었는데 몇 년은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처럼 어수선하고 스산했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집안이 낯설었다.

다행히도 자신의 방은 일주일 전 그대로였다.

소영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예전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집이었지만 익숙한 냄새에 소영은 자신도 모르게 편안함을 느꼈다.

    

깜빡 잠들었던 소영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온 사방이 깜깜한 밤이었다.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켜려고 해도 온 집안의 스위치가 먹통이었다.

소영은 깜깜한 집안에 엄마가 만들어놓은 향초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향초에 불을 켜질 때마다 집안이 점점 밝아졌다.

마지막 향초에 불을 붙이고 성냥에 남은 불씨를 입으로 '후'하고 불어 껐다.

     

그때 소영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영아~ 얼른 와. 저녁 먹자."

     

식탁 위에 따뜻한 밥을 놓으며 소영을 부르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

     

소영이 부엌을 향해 발걸음을 떼려고 하자 이번엔 현관문이 열리면서 아빠가 들어왔다.  

   

  "우리 소영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 왔지~"  

   

아빠가 소영을 향해 말했다.   

  

  "아빠?"     


소영이 입을 떼는 순간 소영의 눈앞에 다시 깜깜한 부엌과 굳게 닫힌 현관문만 있었다.     

손에 들려있던 성냥이 땅으로 툭 떨어지고 소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영은 그제야 부모님의 부재를 실감했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소영은 멈출 수 없었다.

그저 목놓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제발 부모님을 살려달라고, 자신의 부모님을 돌려달라며 울었다.

하지만 우는 소영을 달래줄 사람도, 돌아가신 부모님도,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그저 소영이 켜놓은 향초의 불빛만 흔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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