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낙엽
더위가 한풀 꺾인 김에 오래간만에 시내 나들이를 했다. 가려고 저장해 두었던 음식점을 방문했는데, 먹는 동안은 맛있었으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속이 더부룩하고 뒷 맛이 남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유제품은 소화가 안 되고 간은 너무 세서 갈증이 난다. 맛있다고 나름 소문난 곳이었는데 내 입맛이 변하긴 했나 보다. 결국 비싼 돈 주고 이런 거 이제는 못 먹는다는 교훈만 얻었다. 그래도, 남들이 맛있다고 떠들면 또 혹해서 찾아가겠지만.
길에서 재미있는 낙엽을 만났다. 가로수 밑에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커다란 나뭇잎들이 몇 개씩 떨어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서 있었다. 잎면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는 보통의 잎사귀들과 달리, 둥그렇게 말려서는 잎의 가장자리로 원뿔처럼 서 있었다. 바람이 불자, 서 있는 그 상태로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길 위를 스스슥 미끄러져 가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어 한참을 쳐다보았다. 망토를 두른 마법사가 마법 지팡이를 휘둘러 바람을 부르는 것 같다.
마지막 주 수요일은 궁 입장이 무료라서 덕수궁 내부를 산책했다. 덕수궁과 국립민속박물관을 무척 좋아하는데, 주변에 쟁쟁한 네임드들이 있다 보니 좀 묻히는 경향이 있다. 시청역에서 내리면 아무래도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길을 걷게 되고, 안국역에서 내리면 국립현대미술관과 경복궁에 들르게 된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마음을 떨치기가 어렵다. 해가 비추니 걷기에는 여전히 덥다. 조금 더 선선해지면 민속박물관에 한 번 가야지. 박물관 야외 정원을 한 바퀴 돌고 현대미술관 테라로사에서 커피 한 잔.
시간이 느린 듯 빠르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