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가는 사람을 보는 것은 고통이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우리는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고 대화를 많이 나누지도 않았다. 몇십 년을 한 가족으로 살았지만 남보다 더 친밀하고 더 잘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는 사이. 그저 부모라는 이유로 지금의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부터 나의 생계를 오랫동안 책임져야 했던 사이.
알고는 있지만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다. 어머니가 다니던 직장이 내가 사는 동네에 있었다는 것. 심지어 내가 자주 다니던 길목에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카페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면이 아니라 좌표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특정 장소를 알고 있을 뿐, 각 장소들이 어떻게 상대적으로 위치해 있는지는 머릿속에 잘 없다. 더욱이 길이 격자모양이 아닌 휘어진 도로로 이어져 있을 경우에는 방향감각이 엉망이 되어서 나중에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였던가, 여기서 여기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었나 새삼 놀라게 된다.
평소 다니던 길에서 조금 발길을 틀어 어머니가 매일을 보냈을 공간을 걸었다. 집 앞 병원을 두고 굳이 여기 멀리 있는 병원을 고집할 때 번거롭다고 귀찮아했는데, 어머니의 직장 바로 옆에 있는 병원이었다. 이 근처 어느 골목을 거닐고 이 근처 어느 카페, 근처 어느 식당을 매일 다녔겠지.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을 살고 있었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퇴직한 시점이니 서로 다른 시간대였지만.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난 지인이 인터넷에 남긴 리뷰 글이 해외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팝업으로 뜬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소스러치게 놀랐던지. 지인의 아이디가 보이는 순간 메시지가 온 것으로 착각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서라도 한 공간에 있는다는 것. 그 순간이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형용할 수 없이 애달팠다. 너는 또 여기저기 어딘가 발자국을 남겼을 테고, 세상을 돌다 보면 어느 순간 예기치 않고 우리는 한 공간에 있겠지.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말을 걸어오겠지. 때로는 내가 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