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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누스 앙상블 송년음악회

연말의 명동

by 소소

중구에서 주관하는 명동아트브리즈 송년음악회를 다녀왔다. 무누스 앙상블이 출연하여 피아졸라 탱고를 연주했다. 공연이 끝나고는 1층 카페에서 얼그레이티를 한 잔씩 나누어 주었다.


공연 자체는 매우 좋았는데, 굳이 시정 홍보하고 구청장이 한 말씀하며 20분을 소요한 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화 행사에 지자체장 나와 한마디 하는 건 원래도 싫은데, 지금 이 시국에 지난 대선 선대본부에서 일하기까지 한 중구청장은 자중할 때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하 호호거릴 때는 아니지 않은가. 기왕 나왔다면 안부와 위로의 인사를 먼저 건네었어야지.

내심 분노하여 처음에는 공연에 집중하지 못했다. 더하여 공식 카메라맨이 홍보 영상 찍는다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것도 불편, 관객석에서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녹음하고 사진 찍는 것도 불편, 속으로 혼자 부글부글 불평불만을 터트리다가 중반쯤 되어서야 마음이 풀어지고 공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듣는 앙상블은 역시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과는 다른 울림이 있다. 모든 소리가 살아있다. 단순히 소리가 합쳐지는 것이 아니고 소리의 위치가 있다. 위치가 있으니 존재가 실감된다.


연말이라 그런지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인지 애잔한 감성이 올라온다. 저 앞에서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평균을 벗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일 테지.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아도 나는 도달하지 못할 단계에 올라선 사람들.


피아졸라를 처음 내게 소개해준 오래 전의 인연이 떠올랐다. 그때 선물로 받은 피아졸라 전집 시디.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내 오래된 일기장은 다 버렸어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그 시디들. 이제 닿을 리 없는 허망한 안부인사를 잠깐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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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으로만 듣던 신세계 백화점의 미디어 파사드도 구경했다. 을지로에 직장이 있었으면서도 정작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퇴근 시간이면 일분일초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으니.


그러고 보면 명동은 신기한 동네이다.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을 것 같은데 많은 기억이 쌓여있다.


단골집이라며 친구가 호기롭게 데려갔던 대사관 옆 중국집. 처음으로 누룽지탕을 먹어보았다.


월병가게 도향촌. 충무로 필동에 2호점이 생겨 좋아했었는데.


설레던 이십대 구애의 기억이 있는 곳. 그때는 명동이 참 넓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면 참 작다.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에 맥주를 마시던 호프집이 있었는데. 골목에 있던 골뱅이 집도, 돈가스 집도 기억이 난다.


멀리 종로타워가 보인다. 꼭대기에 탑클라우드라는 레스토랑이 있었지. 화장실이 호화로워서 놀랐지.


대학입시를 앞두고 몰래 친구들과 놀러 나왔다가 명동 인파를 촬영하는 방송 카메라를 보고는 찍혀서 티비에 나올까 달아나던 기억.


롯데 백화점의 외관이 화려하다. 학창 시절 광화문 교보문고나 남산 도서관에 들른 날이면 롯데 백화점 앞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지금은 번호가 바뀐 710번 버스. 어느 날인가는 늦은 저녁 승객이 나 하나뿐이라 기사 아저씨가 노선을 살짝 빗겨 집 앞에 내려주기도 했다.


어릴 때 부모님과 택시를 타고 명동에 와서 고기와 냉면을 먹던 장면이 기억에 있다. 단이 높게 올라온 벽장 같은 방의 구조가 독특해서 기억한다. 그 골목이 어디 즈음인지 어느 가게인지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쩐지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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