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남태령
어제 잠실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석촌호수에서 열리는 공연이 있어 관람했다.
'처랏' chee_rart 이라는 놀이패였는데,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인이라서인지 비주류 국악이기 때문인지, 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리가 있어 들어갈 수 있었다.
점잖고 쑥스러워하는 한국인 특성상 관객이 제대로 흥을 돋우지 못하고 어설펐다. 단체 줄넘기 할 때와 같이 박자에 맞추어 물 흐르듯 잘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타이밍을 못 잡고 어설프게 들어가는 추임새들. 그나마 나이 좀 지긋한 어르신들이 그럴듯한 박자로 넣었다.
젊은 친구들이 흥에 겨워 공연하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가란 참 대단한 직업이다. 더욱이 비주류 영역을 택한 이들은, 어디서 저 기술들을 다 배우고 익혔을까. 악기도 연주하고 춤도 추고 묘기도 부리고 창도 하고.
어린 시절 국민학교 운동회의 단골 행사로 누구 좋으라고 하는지 모를 매스게임과 사물놀이, 부채춤, 에어로빅 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다. 학생들이 즐기는 운동회가 아니라 관람석의 일부를 위한 눈요기거리들이었으니. 운동회 한참 전부터 방과 후에 연습을 했던 것 같다. 그때 고학년들은 사물놀이를 했는데, 동아리 같은 게 있지는 않았으니 다 선발되어 급조된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었을 거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역시나 머리에 쓰고 돌렸던 상모였다. 급조하여 공연할 정도면 생각보다 난도가 높지는 않은 것인가 싶기도.
첫 공연은 '비나리'였고 그전에 관객들이 적은 소원을 읽어주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도 적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쉽다.
--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기사를 읽다 남태령 소식을 들었다. 아, 그 늦은 시간 추운 날씨에 남태령으로 가는 시민들이 있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를 대절하여 쉼터를 제공한 사람도...
아침에 일어나니 집안 기온이 20도 밑으로 떨어져 있어 난방을 한 단계 올렸다. 오늘이 동지라고 하여, 집 앞 마트에 가서 팥죽을 사 왔다. 오늘은 왠지 아파트 앞에 까치가 잔뜩 몰려와 있었다.
따듯한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부끄러움을 넘어 슬프다. 기사를 읽으며 울분을 터트리지만 정작 행동하지는 않고 몇십, 몇백만 원씩 선결재나 후원을 하지도 않는다. 빨리 남들이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는 무임승차자다. 평생을 무임승차자로 살아왔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예민하여 불편한 마음. 그래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들을 보면 분통이 터지고 증오스럽다. 너희만 아니면 내가 이렇게 양심이 부대껴 전전긍긍할 일 없이 좋은 사람인척 살 수 있었을 텐데.
2-30대 여성들이 참여가 두드러지는 반면 2-30대 남성들의 참여는 가장 저조하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릴없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우울하다가도 내가 바로 그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니, 다 나 같은 사람인 것을.
오늘도 사람에게 큰 빚을 졌으니 사람에게 친절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