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집에 내일의 쓰레기를 담다

유행을 결제하고 안목을 유예한 인테리어 표류기

by 한걸음

포모(FOMO)가 데려온 집

부동산 비관론자인 남편의 관점에서 집은 ‘사는(LIVE) 곳’ 이전에 ‘사지 말아야 할(BUY) 공포’에 가까웠다. 우리는 결혼 후 꽤 오랫동안 세 들어 살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니 더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전 국민이 집값 폭등의 공포에 사로잡혔던 부동산 포모(FOMO)의 파도가 우리집에도 밀어닥쳤다. 이번에도 남편의 비관론에 기댈 수는 없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집을 샀다.


계약서를 쓰고 견적을 위해 인테리어 업자를 동반해 방문한 새집은 처참했다. 전주인 가족은 그날 거실에서 대놓고 삼겹살을 굽고 있었고 전적이 있었는지 벽지 곳곳에 기름때가 눌어있었다. 새로 산 거라며 가져가야 한다던 빌트인 오븐은 차라리 제발 가져가 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만큼 불결했다.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쓰레기장 같았다.


옥색 몰딩의 신혼집, 신축 아파트의 단조로운 깔끔함만 거쳐 온 내게 ‘전체 인테리어’라는 큰 숙제가 생겼다. 그때부터 나는 <오늘의 집>에서 살았다.


nolan-issac-K5sjajgbTFw-unsplash.jpg 전체 인테리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어딘가 수상한 공사

업체 선정부터 난항의 연속이었다. 나름 꼼꼼하고 계획적인 인간이라 자부했지만, 사실은 인테리어 시장에 던져진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뭘 물어도 무조건 된다는 곳, 아무것도 안 된다는 곳, 다들 어딘가 수상했다. 회사일도 바쁘고 독박육아 중이던 때라 분초를 쪼개 알아보며 결국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곳과 계약했다.


첫 일주일은 순조로웠지만 철거 이후 한 달 정도는 진척이 없었다. 매일 들러도 그랬다. 알고 보니 코로나 시기, 인테리어 수요가 폭발해 인부를 구하지 못한 업자가 거짓말을 한 거였다.


결국 남은 일주일 동안 모든 공사가 날림으로 진행됐다. 디자인은 내가 수집한 레퍼런스를 흉내 냈지만, 마감과 자재는 날림이었다.


이사하는 날 아침, 한쪽에서는 이삿짐이 들어오고, 구석에서는 인테리어 인부들이 드릴질을 했다. 다른 쪽에서는 입주 청소 여사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걸레질하다 “더는 못하겠다”며 짐을 싸고 나갈 정도였다.



오늘의 집을 흉내 낸 우리집

가구를 고를 때도 <오늘의 집>은 충실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저장해 둔 사진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그 집과 비슷한 가구를 고르면 비슷한 분위기가 날 것 같았다.


거실에 전면 책장과 원목 테이블을 들인 건 하루 종일 TV를 켜놓고 사는 환경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TV 대신 책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그 무렵 아이 셋을 명문대에 보냈다는 일본 엄마의 책 때문에 거실 서재화 열풍이 한창이었다. 내 진심과 유행이 겹친 순간이었다.


취미방 레퍼런스를 보고 남편의 로망을 실현해 주겠다며 큰맘 먹고 프라모델 전용 장식장을 짜 넣었다. 여기까진 분명 <오늘의 집>이었다.


그런데 버리지 못해 가져온 장롱에 침대를 맞추고, 갖고 있던 책장의 색에 고가의 소파 색을 맞추었다. 하나하나 이유가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모아놓고 보니 제각각이었다. 결국 여기서부터 <오늘의 집>도 나의집도 아닌 애매함이 시작됐다. 고민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각 있는 집들은 인테리어와 가구가 아니라 스타일링이 달랐다. 작은 소품까지 세심하게 배치한 집주인의 감각이 살아있었다. 나는 일직선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고, 잡다한 소품을 관리하며 살아갈 정성도, 시간도 없었다.


그저 <오늘의 집>에서 취향과 유행을 구분하지 못한 채 예쁜 사진만 골라 저장했을 뿐이었다.


화면 캡처 2026-04-22 191851.png 다음번엔 취향으로 고르기 위해, 지금부터 천천히 고민한다. (출처 : 오늘의 집)



쓰임은 있으나 유행이 지나며 낡는 집

우리 집은 편하다. 쓰임이 없는 아이템이 없어서다. 프라모델 장식장에는 남편의 수집품이, 거실 테이블에는 아이의 책과 나의 노트북이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쓰임만 가득한 이 공간이 두고두고 아쉽다.


가끔 주방 타일 사이에서 메지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면 그날의 공사가 떠오른다. 온통 화이트 일색이라 어느새 유행이 한물 지나버린 거실이 단조롭게 느껴진다.


처음 봤을 때 그렇게 깔끔하고 세련돼 보였던 풍경이 지금은 <오늘의 집>에서 수없이 보았던 뻔한 배경이 되었다. 유행은 이렇게 조용히 낡는다.


유행을 따라간 집은 유행이 지나면 낡는다. 하지만 취향을 따라간 집은 세월이 지나도 그 사람의 집으로 남는다는 걸, 나는 ‘내일의 쓰레기’ 언저리를 서성이는 지금에야 겨우 알 것 같다.





당신의 집은 <오늘의 집>인가요, 당신의 집인가요?


다음엔 한정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 아니면 안된다는 말에 속아 넘긴 안목에 대하여.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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