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취향을 걸치고 다닌 계절들

옷보다 오래 걸치고 다닌 습관

by 한걸음

나만 온도가 달랐다.

한동안 옷을 좋아하는 동료들과 어울린 적이 있었다. 밥을 먹고도 점심시간이 30분쯤 남으면 으레 우리는 회사 근처 보세 옷가게로 향했다. 좁은 가게 안은 옷걸이가 빽빽하게 차지했고, 스피커에서는 늘 비슷한 감성적인 템포의 음악이 흘렀다.


사장 언니는 단골들의 방문을 유난을 떨며 반겼고 그녀들은 그 안에서 자연스러웠다. 새로 들어온 옷이 뭔지 척척 골라냈고, 옷걸이에서 옷을 빼내는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거 어때?” 한마디에 칭찬과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내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별로 반응하지 않았고, 손만 옷걸이를 훑었다. 건조하게.


그런데도 나는 가끔 그 가게에서 옷을 샀다. 매번 그냥 나오려니 ‘센스 없는 구경꾼’으로 남겨질까 조바심이 났다. 그녀들과 “이거 너무 귀엽지 않아?” “너한테 진짜 잘 어울린다”를 주고받는 사이 나 역시 어느새 옷 한 벌을 손에 들고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그때도 알고는 있었다. 이건 옷값이 아니라고. 그녀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기기 위한 친교 비용이라고. 귀엽다는 말도, 어울린다는 말도 반은 의례였고 반은 분위기에 취해서였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지갑을 열었다.



아까워서 입는 옷

귀엽다는 말에 속아 산 보세 옷. 예뻐서 입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쇼핑백에서 꺼낸 옷들은 옷걸이에 걸어두어도 손이 가지 않았다. 살 때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을까? 결국 그 옷들은 ‘아까워서’ 입는 옷이 됐다.


마음에 들거나 입고 싶어서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침에 옷장을 열면 손은 자연스럽게 다른 옷을 향했다. 그러다 저 옷도 입어야 하는데, 하는 의무감이 들어 입고 나가면 그날은 종일 옷이 마음에 걸려 어깨가 움츠러드는 하루가 됐다.


내가 그곳에서 산 옷을 입을 때마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너무 푸대자루 같은데, 그런 거 왜 자꾸 입노? 버리고 좀 제대로 된 거 사 입어라.” 틀린 말이 아니었는데 버릴 수가 없었다. 돈 주고 산 걸 버린다는 게, 속으로 알면서도 지갑을 열었던 나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아까워서, 버리기 싫어서, 그래서 입은 옷. 그것이 그 시절 내가 걸치고 다닌 옷들의 정확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옷들 곁에는 전혀 다른 이유로 손이 가지 않는 옷들도 있었다.



살 빠지면 사려고 했는데

사실 나는 옷에 대한 취향이 꽤 뚜렷한 편이다. 단정한 오피스룩, 바느질이 예쁘고 원단이 좋은 것, 한 벌을 사더라도 3~4년은 거뜬히 입을 수 있는 옷.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명확했다. 그 명확한 취향의 지난 증거가 옷장 한켠을 아직 차지하고 있었다.


버리지 못한 24인치 청바지, 돌아오지 않는 그 시절


코트 한 벌, 재킷도 두어 벌, 원피스 두어 벌, 허리 사이즈가 24인치쯤 되는 청바지 몇 벌. 과연 내가 이걸 입고 다닌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먼 옷들.


그 옷들은 내가 가장 나다웠던, 거울 속의 내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던 시절의 흔적이라서 버릴 수가 없었다. 언제고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옷들을 다시 입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약속했다. 살 빠지면 이 옷들도 다시 입고, 예쁜 옷들도 많이 사야지. 지금은 그때를 기다리는 중일 뿐이라고.


그 약속이 10년이 훌쩍 넘었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날렵한 몸매로 돌아가는 건 기적에 가깝다는 걸, 사실 마음을 먹는 것조차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라는 가짜 전제가 없으면, 의지박약한 지금의 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아직 아니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진짜 내가 될 수 있다고. 그 말 뒤에 지금의 나를 계속 숨겼다.


그 사이 옷장은 채워졌다. 마음에 드는 척하며 사온 친교, 일단 지금만 입자는 마음으로 사온 체념, 언젠가 살이 빠지면 입을 희망. 내 취향도, 지금의 내 몸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옷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돌아오지 않는 그 시절을 기다리는 옷들과 함께.



나만 모른 척했을 뿐

나는 그 옷들을 입으며 이걸 ‘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야. 진짜 나는 나타나지 않았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인정하든 말든 거울 속에 매일 있는 사람은 진짜 나였는데 말이다.


남의 취향을 걸치고 다닌 계절들. 돌이켜보면 그 옷들보다 더 오랫동안 걸치고 다닌 게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라는 그 생각. 진짜 나를 기다리느라 지금의 나를 계속 유예했던 습관. 그게 점심시간 보세 옷가게 안에서, 아까워서 입던 옷 속에서, 옷장 가득 쌓인 어울리지 않는 옷들 사이에 조용히 배어있었다.


거울 속 사람은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외면한 그 눈길을 이제야 나도 마주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엔 집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유행을 따라가다 잃어버린 우리집의 결에 대하여.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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