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멈춘 것과 진짜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홍콩야자 키우는 방법을 검색했을 뿐인데
회사 복도에 버려진 화분이 생기면, 나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 축에 속한다. 한번은 홍콩야자를 구조한 적이 있다. 난이 주인공인 화분에 곁들이로 심겼던 것이었다. 잎이 싱싱하고 줄기가 건강한 데다 우리집에 없는 식물이라 데려왔다. 문제는 키우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급한 대로 집에 있던 흰색 플라스틱 화분에 옮겨놓고 검색을 시작했다. 물은 얼마나 줘야 하지? 햇빛은 어떻게? 분갈이는 언제? 딱 그것만 알면 됐다.
그런데 검색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내 인터넷 포털은 홍콩야자 인테리어, 홍콩야자 키우는 방법 등 홍콩야자로 도배됐다. 쇼핑탭에도 온통 토분에 담긴 아름다운 수형의 홍콩야자로 가득 찼다. 나는 단지 키우는 방법이 궁금했을 뿐인데, 알고리즘은 내가 홍콩야자 마니아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화분이 있었다. 아담한 토분에 줄기가 우아한 곡선으로 휘어진 미니멀한 수형의 홍콩야자였다. 나뭇잎 하나까지 균형 잡혀 있었다. 볼수록 예뻐 눈을 감아도 아른아른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화분 속 홍콩야자와 내 홍콩야자를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것은 곧은줄기에 잎도 너무 풍성해서 어쩐지 멋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푸릇푸릇 싱싱하다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보잘것없어 보였다.
나는 버려진 생명이 안타까워 데려온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화분 쇼핑몰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거지? 검색창에 “홍콩야자 키우는 법”을 검색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더 예쁜 홍콩야자를 갖고 싶다”라는 욕망이 생겨버렸다. 알고리즘이 바꿔놓은 건지, 내 안에 원래 있던 욕심을 알고리즘이 꺼내 놓은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기분이 묘한 것만은 확실했다.
원래 사고 싶었던 건지, 계속 봐서 사고 싶어진 건지
사실 홍콩야자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한번 검색한 상품이 한동안 포털의 모든 화면을 따라다녔다. 운동화든, 가방이든 뭐든 그랬다. 처음에는 무시했다. 그런데 계속 반복되다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 사고 싶었던 건지, 계속 봐서 사고 싶어진 건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알고리즘이 없던 시대, 나는 한번 마음에 든 상품이 있으면 그것만 반복해서 샀다. 사기 전에는 심혈을 기울여 비교 분석하지만, 일단 마음에 들면 취향을 고집했다. 취향의 고착화는 알고리즘의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가 지금과 다른 점도 있었다. 무한한 인터넷의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성이 취향을 넓혀줬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너무 발달해버린 지금은 내가 한번 반응한 것과 비슷한 것만 계속 보여준다. 취향은 점점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된다. 안전한 선택이지만 답답하다.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건 내 취향이 아니라 나의 반응일 뿐이다. 나의 시선이 잠시 멈춘 것, 한 번 클릭만 한 것, 장바구니에 담아만 둔 것들을 ‘나의 취향’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아쉽다. 잠깐 멈춘 것과 진짜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한쪽 이야기만 들으면 다른 쪽이 이상하게 들린다.
알고리즘은 쇼핑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육아를 시작한 이후 TV를 없애고 유튜브로만 뉴스를 듣는다. 처음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자 다양한 채널을 골라봤다. 이쪽저쪽 이야기를 다 들으며 나름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피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몇 번 더 클릭한 쪽의 콘텐츠는 자꾸 보이는데, 다른 쪽 이야기는 감춰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건 그다음이다. 입맛에 맞는 한쪽 이야기만 계속 들으니까 다른 쪽 말이 ‘이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은 변화를 알아챌 수도 없을 만큼 조용하게 나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편리함 때문에 알고리즘을 포기하지 못한다. 생각의 폭을 좁히는 편리함은 축복일까, 가스라이팅일까?
같은 손이 등을 토닥이기도 하고 떠밀기도 한다.
알고리즘의 도배가 고마웠던 적도 있다. 입시 정보를 검색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었다. 그때 한 번 검색하니 입시 설명회, 전형 비교, 합격 후기까지 알고리즘이 정보를 알아서 쏟아냈다. 망망대해에 떠 있다가 갑자기 항로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문외한에게 알고리즘이 길잡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축복과 가스라이팅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시 정보를 쏟아내는 고마운 손과, 예쁜 화분을 들이미는 유혹의 손은 결국 같은 알고리즘이다. 내가 목적을 가지고 정보를 찾을 때 알고리즘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지만, 목적 없이 선택지에 반응할 때는 교묘한 가스라이팅이 된다. 내가 알고리즘을 도구로 쓰느냐, 알고리즘이 나를 데이터로 쓰느냐의 차이다. 같은 손이 어떤 날은 등을 토닥이고 어떤 날은 등을 떠민다.
나는 알고리즘이 열어준 길을 걷는걸까, 알고리즘의 데이터가 되는걸까
같은 알고리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는 매번 알아채지는 못한다. 다만 새로운 홍콩야자를 사지는 않았다.
홍콩야자는 지금도 우리집 베란다에서 충실히 새잎을 틔워내고 있다. 하얀 플라스틱 화분도 그대로다. 곧은줄기도, 세련되지 못한 무성한 잎도 그대로다. 나는 예쁜 화분을 새로 사는 대신 직접 수형을 잡아보기로 했다. 알고리즘이 보여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저장해뒀다.
사는 것과 키우는 것, 그 차이를 겪어보기로 했다. 알고리즘이 보여준 것은 완성된 결과물이었지만 나는 과정을 선택하기로 했다.
최근에 들인 물건 중, 내가 원해서 산 건지 계속 보여져서 산 건지 헷갈렸던 물건은 없을까요?
알고리즘은 둘째치고, 혹시 주변 사람의 취향에 끌려가본 적은 없으신가요? 팔로우하시면 남의 취향을 걸치고 다닌 계절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