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느끼다
몸이 버텨주지 못했다.
왼쪽 어깨가 터져버렸다.
의사는 차갑게 말했다.
“석회성 건염. 염증이 뼈까지 생겼어요.
석회도 크고요 수술을 권합니다.”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 마치자마자 말했다.
“수술은 안 됩니다. 제가 일을 쉬면 안 되거든요. 제발 약물로 치료해 주세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상으로 돌아왔던 갑상선 항진증 수치도 좋지 않았다.
병원을 나온 날,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어깨가 아프니 머리조차 스스로 묶지 못했다.
한여름에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거나 직장 동료에게 부탁해야 했다.
검사 때문에 머리를 풀고 누운 뒤 끝나고 간호사에게 다시 묶어달라고 부탁했던 순간
나는 그 모양이 너무 슬펐다.
존엄이 스르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첫째는 장난감 놀이가 잘 안 되자 투덜거렸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때문이야.”
내 안에서 마지막 남은 뼈마저 부러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뱉었다.
“그럴 거면 아빠한테 가서 살아.”
말은 흉기였다.
아이의 얼굴이 굳는 걸 보면서도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아픈 어깨보다 더 무서운 건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한 마디였다.
잠시 후 첫째는 울며 말했다.
“엄마 아니야 싫어. 엄마랑 살고 싶어요.”
그날 밤 아이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고 잠들었다.
하지만 아이의 품 안에서 나는 차갑게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을 진짜로 아빠에게 보내고 싶었다.
내가 힘들어서가 아닌 벅차서가 아닌 내가 과연 좋은 엄마인가 끝없이 의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잔인한 깨달음이 왔다.
아이들이 없으면 나는 게을러지고 무너질 것이다.
나를 나로서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건 내 힘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스스로 절대 부지런하거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까지 한다.
나는 사실 엄마가 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내 곁에 있다.
내가 무너지는 날에도 아이들은 내 품으로 와서 나를 안는다.
서툴고 상처투성이지만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엄마 됨’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