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한 달빛 Aug 19. 2021

이런 책, 있을까요?

달빛 아래에서 그림책 ⑧ -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

3년 전 혼자서 싱가포르로 여행을 갔었다. 가고 싶은 장소를 알아보다가 한 곳을 발견하고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코로나로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그 당시 취미 중 하나가 '독립서점 탐방'이었다. 나는 대형서점이 가질 수 없는 주인장만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독립서점이 좋다. 무더운 여름날, 다리품을 팔며 골목에 숨어있는 책방도 마다하지 않고 갔던 일, 아기자기한 주인장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 퀼트 소품들에 저절로 미소 지었던 일, 따뜻함이 느껴지는 손글씨로 책 내용을 적어놓은 메모지를 보며 바로 사고 싶었던 일, 그리고 진로가 고민될 때, 인간관계가 힘들 때, 훌쩍 여행 가고 싶을 때 등으로 구분해 놓은 주인장의 세심한 책 진열법에 감탄했던 일, 책을 고르고 계산할 때 주인장은 내가 고른 책을 보며, "이런 책에 관심이 있으시네요? 이 책 재미있어요!" 하며 정겨운 말 한마디로 마음 따뜻해졌던 일들이 독립서점에 대한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주택단지이자 우리나라의 연남동 같은 곳이라고 소개된 티옹바루. 그곳의 유명한 독립서점인 '북스액추얼리'를 발견하고 여기는 꼭 가기로 다짐했다.


서점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심한 길치다. 구글맵을 보면서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번은 물어봐야 하는, 몇 분 거리에 있어도 몇십 분을 걸려 도착하는 길치.


버스를 타고 마을에 도착했다. 역시나 그날도 구글맵을 보면서 가는 데도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마침 인상 좋은 모녀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정한 목표 중 하나인 영어로 말 걸어보기! 난 용기를 내서 물어봤는데 모녀는 서로 웃으면서 본인들도 이 동네가 처음이란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걸어가다가 슈퍼가 하나 보인다. 왠지 그곳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레 들어가 주인아저씨께 물어본다. 주인아저씨는 가게 문 으로 나오셔서 손가락으로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한단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알려준 곳으로 갔다. 그 뒤로도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우체부 아저씨의 도움으로 드디어 '북스액추얼리'에 도착했다.


건물의 외관은 뭔가 빈티지하면서 예술적인 느낌이 들었다. 문 앞에 있는 책 자판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으로 들어가니 삭막한 바깥세상과는 다른 책의 온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낯선 땅에서 접한 독립서점. 들어가기 전 뻘쭘했던 것도 잠시, 책장과 바닥을 메우고 있는 다양한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질서 정연하고 깔끔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보다 느낌 가는 대로 툭툭 꽃아 있는 책들과 소품들이 더 멋스럽다. 책장을 파티션으로, 뒤편 좁은 공간에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성냥개비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빈티지한 타자기들과 손때 묻은 아기자기한 소품들, 빼꼭하게 꽂아있는 CD들이 낯선 이의 방문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 같다. 그래, 이런 것들이 독립서점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지.




티옹바루의 독립서점, 북스액추얼리




난 가끔 책방 주인이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상상하는 재미를 빼면 살아갈 의미 없는 빨간 머리 앤처럼 상상 속에서는 온갖 좋은 것들을 가져다 놓고 서점 놀이를 한다. 물론 현실은 상상과는 다르겠지만 마음속에 이런 낭만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느 날 나는 마을 변두리에 상상력 가득한 책들이 있는 서점 하나를 발견했다. 조금은 이상할 수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책들이 있는 곳, 그리고 가슴 한편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이 가득한 잭들이 있는 곳, 바로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이다. 책장에 꽂아 있는 책 제목들이 범상치가 않다.


<작가의 나무, 키우는 법>, <달빛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책>, <독서 보조 로봇>, <독서 이력 수사관>, <도서견>, < 카리스마 서점 직원 양성소의 하루>, <서점 결혼식>, <세계 일주 독서 여행>, <무덤 속 책장>, <수중 도서관>, <책이 네모난 이유>, <사랑스러운 도서관> 등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편리한 기능을 탑재한 <독서 보조 로봇>이 탐난다. 시끄러운 곳에서 책을 읽을 때 독서 로봇이 나타나 귀를 막아주고 읽기 싫어지면 격려를 해주고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림 한 컷 따라 그리기 - "그럼요, 있다마다요!">



서점은 정말 어떤 곳이길래 그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걸까? '있으려나 서점'에는 <서점이란 어떤 곳>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서점'다음과 같이 말한다.


"희망과 실망과 욕망, 타인의 인생과 본 적이 없는 풍경, 세계의 비밀과 또 하나의 자신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곳"


서점에 가면 좋은 것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있고 새로운 세계를 접할 때의 설렘이 있다. 그리고 오늘도 있으려나 서점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갈 것이다.


"혹시, 조금 이상한 책 있을까요?"

"그럼요, 있다마다요! 이런 책은 어떨까요?"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




달빛 아래에서 그림책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