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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May 19. 2024

몰래 녹음한 통화 '불륜 재판' 증거 될까? 네!

오늘 네이버 메인 화면에 걸려 있던 신문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몰래 녹음한 통화, '불륜 재판' 증거 될까, 이번엔 대법 판단은?


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405191136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이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습니다.


배우자 불륜을 입증하려고 불법으로 녹음한 통화 파일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위법 수집 증거는 형사재판뿐 아니라 민사·가사재판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변호사나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의심이 갔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법원이 법의 한계를 넘어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저 기사를 자세히 보니 기자가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위법 수집 증거(보통 줄여서 '위수증'이라고 부릅니다)는 형사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형사 소송법의 규정 때문이지요. 그런데 형사소송법이 적용되지 않는 민사나 가사 재판에서는 위법으로 수집한 증거라고 하더라도 재판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민사소송법이나 가사소송법에서는 위수증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에서 없는 법을 만들어 내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을까요?


아닙니다.


대법원이 위법 수집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한 근거는 통신비밀보호법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중 아래 조문을 보시죠.



제14조(타인의 대화비밀 침해금지) ①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②제4조 내지 제8조, 제9조제1항 전단 및 제3항, 제9조의2, 제11조 제1항ㆍ제3항ㆍ제4항 및 제12조의 규정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녹음 또는 청취에 관하여 이를 적용한다.

제4조(불법검열에 의한 우편물의 내용과 불법감청에 의한 전기통신내용의 증거사용 금지)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불법검열에 의하여 취득한 우편물이나 그 내용 및 불법감청에 의하여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법조문이라 읽기 어렵습니다만, 위 법 제14조 제1항에서는 가령 타인간의 휴대전화 녹음이나 청취를 금지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제4조를 적용한다고 하고 있는데, 제4조를 봤더니 그렇게 불법으로 취득한 내용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판은 형사 재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까 민사나 가사재판에서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원칙을 민사나 가사 소송에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위 통신비밀보호법의 규정 때문에 타인간의 통화를 불법으로 수집한 것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기사의 내용대로 '몰래' 녹음한 통화는 다 불법인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개는 아닙니다.


우선 '몰래'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몰래'는 '남이 모르게'라는 뜻이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통화를 녹음할 일도 별로 없긴 하지만, 녹음을 하는 때는 대개 나와 상대방의 통화인 경우가 많죠. 저도 소송을 하다 보면 나오는 대부분의 통화 녹음 증거는 의뢰인이 다른 사람과 통화를 녹음한 것들입니다. 미리 녹음한다고 하면 필요한 말을 듣기 어려우니 대개는 '몰래' 녹음을 하죠. 이게 불법일까요?


위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의 규정을 보시죠. 분명 '타인간의 대화'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간'이 일본식 한자어라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무엇과 무엇 '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통신비밀보호법은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통화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요.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 녹음하는 것도 합법입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증거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은 '스파이앱'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것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고 그 법에서는 그렇게 수집한 것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번에 대법원의 입장이 바뀐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그래왔습니다. 법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으니 당연하죠.


그런데 왜 1, 2심에서는 다르게 판단하였을까요? 현실적으로 민사나 가사재판에서 위수증은 배제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는 게 대부분입니다. 


가상의 사례를 하나 만들어 봅시다. A와 B는 부부사이이고, C가 A와 외도를 하였습니다. 이때 B는 증거를 잡기 위해 A의 휴대전화에 몰래 스파이앱을 설치해서 A와 C사이의 은밀한 대화를 녹음하였습니다. 이때 B는 재판에서 굳이 그 녹음을 제출할 필요 없이 녹음을 A에게 들이밀며 추궁하는 대화를 제출해도 됩니다. 그러면 타인간의 대화가 아니니까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있습니다.


사실 B는 그냥 불법으로 녹취한 것을 재판에 제출해 버려도 됩니다. 이때 A가 통신비밀보호법의 규정을 들어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려면 A는 변론과정에서 부득이 C와 그러한 내용의 대화를 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법원은 불법 녹취가 아니라 A의 진술을 근거로 판단하면 그만입니다.


문제의 이 사건에서도 결론적으로는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점이 인정되었죠.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실무에서는 별로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통신비밀보호법에 그런 규정이 있었구나, 몰랐네?' 정도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이번 기사를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할지도 모르는 불륜남, 불륜녀들!


증거와 상관없이 그냥 사실이면 제발 인정 좀 합시다. 가정 파탄의 대가치고는 얼마 되지도 않는 1,000~2,000만 원의 위자료를 주기 싫어서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너무 구차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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