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코로나 사태가 막바지에 이르러 마스크를 벗은 지 얼마 안 되던 때였다.
푸껫에서 배를 타고 피피섬으로 들어갔는데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냥 더워서 그러려니 했다. 워낙 더웠으니까 말이다.
구글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다가 표지판도 제대로 없는 데다가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아도 입구를 도저히 못 찾겠어서 짜증이 났다. 무슨 팔괘진에 빠진 것처럼 돌고 돌다가 겨우 입구를 찾아서 들어갔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을 받았는데 4층이란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 들고 겨우 방을 찾아 들어가 대충 정리하고 누워버렸다. 무슨 산에 올라가 석양을 봐야 한다고 하는데, 시간이 남아서 그냥 자버렸다.
한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 약간 이른 시간에 산에 올라갔는데 생각보다 길은 좁고 꽤 가팔랐다.
예정했던 석양을 보고 나오면서 주변 가게들을 봤더니 호핑 투어 상품을 많이 팔고 있었다. 몇 군데 들러서 가격을 알아본 다음 클룩에서 찾아보니 비슷한 상품이 훨씬 더 싸게 나와 있길래 바로 예약을 했다. 7 섬 투어였다.
대충 저녁에 먹을 것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몸이 별로 안 좋았다. 그래서 술은 먹지 않고 밥만 먹고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잤다.
7 섬투어는 거의 새벽같이 일어나야 해서 일찍 나왔는데 역시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까우니까 안 가기도 뭣 했다.
나무로 된 통통배 같은 것을 타고 섬에 데려다주고는 언제까지 돌아오라고 했다. 그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잽싸게 달려가 사진을 찍고 물에 한 번 몸을 담갔다가 오면 끝이었다. 옷을 매번 갈아입기도 귀찮고 시간도 없어서 그냥 수영복 차림에 위에만 하나 걸치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섬에 가려던 차에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비가 얼굴을 때리듯이 내렸다. 결국 도저히 안 되겠던지 배를 세우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태국에 내리는 비가 으레 그렇듯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리다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싶었을 때 거짓말처럼 비가 멎었다. 싸고 알차게 놀긴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다음 날, 토요일이었는데 아침부터 몸에 열이 많이 났다. 그냥 타이레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보험사에 전화를 했더니 근처에 보험사와 제휴하고 있는 병원은 없고, 그냥 아무 데나 문 연 데 가서 서류만 받아오면 나중에 처리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구글 맵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의원급의 병원이었는데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두 명인가 있었다. 손님이 아주 많지는 않았는데 나 빼고는 다 백인이었다. 워낙 관광지라서 그런 것 같았다.
간호사가 어디가 아프냐고 하길래 열이 나고 목도 아프고 코가 막힌다고 했더니, 의사를 보겠냐고 물어본다. 의사를 보면 돈을 더 내야한단다.
그래서 내가 “의사를 안 볼 수도 있는 거냐”라고 했더니, 자기 생각에는 의사를 봐야 할 것 같다고 그런다.
병원에 갔으니 당연히 의사를 보겠지라는 생각은 한국인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왜 이게 선택인지 모르겠다.
결국 의사 선생님이 나왔는데 코로나 검사하고 독감 검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그러더니 검사키트 두 개를 가져왔다.
그러고 몇 십 분인가, 십몇 분인가 지나서는 코로나는 양성이고 독감은 음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받은 약은 겨우 진통제 하고 목에 뿌리는 스프레이와 오트리빈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이 그냥 약국 가서 감기약 주세요, 하면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놀라운 건 병원비였다. 무려 7,030밧. 우리 돈으로 약 30만 원이다.
의사비도 따로, 간호사비도 따로, 병원비도 따로...
30만 원을 주고 내가 걸린 게 코로나라는 사실만 확인받았다. 간호사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돌아다녀도 되냐고 하니까, 그냥 마스크만 하면 되고 돌아다니는 것은 상관없다고 한다. 뭐, 병원에서 돌아다녀도 괜찮다니까 괜찮은가 싶었다.
그렇게 태국에서 병원 체험을 했는데, 근데 그냥 진통제 먹고 누워 있으니까 별로 안 아팠다.
안 아픈 건 좋긴 한데 30만 원이나 주고 겨우 감기약만 받아와서 좀 억울하긴 했다. 거의 그 나라 사람 한 달 월급 아닌가…
역시 의사가 짱인 것 같다.
병원비는 한국에 돌아와서 보험으로 대부분 돌려받았다. 매번 여행자 보험 들어도 써먹은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써먹어봤다. 다른 건 모르겠고 병원비 보장되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태국에서 30만 원을 다 내 돈으로 쓰라고 했으면 더 억울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