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올리자, 창밖의 풍경이 물처럼 흘렀다.

가방엔 필수품 몇 가지와 오래된 공책 하나뿐이었다.

목적지를 묻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멀어지는 역의 풍경이 작아질수록 마음이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차창에 비친 얼굴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편안했다.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무릎 위를 따뜻하게 덮었다.

누군가가 지나치게 예쁘게 접어둔 승차권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은 어쩌면 ‘어딘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어디쯤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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