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시장의 기괴한 자가당착
법률 시장에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소위 '네트워크 로펌'이라 불리는 거대 법인이 타 로펌에서 피해를 입은 의뢰인을 돕겠다며 '불량 로펌 피해자 구제'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정의로운 '법조계 정화 운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불량 로펌'의 정의(定義)에 딱 들어맞는 영업 방식을 고수하며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이제 와서 자신들은 다르다며 '구원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불량 식품을 만들어 팔던 공장이, 배탈 난 소비자에게 "다른 공장 약은 믿을 수 없으니 우리 약을 먹으라"고 외치는 꼴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피해 구제' 마케팅의 본질은 선의가 아니다. 포화 상태에 이른 법률 시장에서 경쟁 네트워크 로펌의 고객을 빼앗기 위한 고도의 상술이자,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의 시장 교란 행위다.
이들은 자신들이 비판하는 '불량 로펌'과 DNA가 똑같다. 과도한 키워드 광고, 전관 출신을 앞세운 미끼 영업, 저연차 변호사들을 갈아 넣는 공장식 서면 작성 시스템 등 문제의 원인이 되는 구조를 공유한다. 결국 '피해자 구제'란, A 공장에서 찍어낸 불량품을 B 공장으로 가져와 다시 수선해 주겠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는데 결과물이 달라질 리 만무하다.
그들이 구제하겠다는 피해 사례들을 뜯어보자. 역설적이게도 그 내용은 지금껏 네트워크 로펌들이 의뢰인들에게 가해 온 고통의 목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의뢰인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주범은 바로 '기업형 로펌'의 구조적 한계였다.
① "변호사님 목소리 한 번 듣는 게 소원입니다"
가장 흔한 피해는 '소통의 단절'이다. 상담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하던 대표 변호사는 수임료가 입금되는 순간 증발한다. 의뢰인이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면 콜센터 직원이나 사무장이 "변호사님 재판 중"이라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반복한다. 내 인생이 걸린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담당 변호사가 누구로 바뀌었는지조차 모른 채 재판 당일을 맞이하는 '깜깜이 변론' 피해가 속출했다.
② 복사해서 붙여넣기(Ctrl+C, Ctrl+V) 된 내 인생
공장식 로펌의 변호사들은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린다. 물리적으로 사건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파고들 시간이 없다. 그 결과 의뢰인의 특수한 사정은 무시된 채,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유사 사건의 서면을 긁어와 이름만 바꿔 제출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이혼 소송 서면에 엉뚱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거나, 성범죄 사건에 음주운전 사건의 양형 자료가 첨부되는 등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③ 환불은 없다, 배째라식 대응
불성실한 업무 처리에 항의하며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로펌의 태도는 돌변한다. "착수금은 이미 인건비로 소진되었다"며 환불을 거부하거나, 터무니없는 위약금을 요구한다. 심지어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임을 알면서도 실적을 위해 "무조건 된다"고 속여 수임한 뒤, 패소하면 "판사가 이상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 '구제 서비스'를 홍보하는 로펌은 과연 위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운가. 수십 개의 분사무소를 중앙 통제 없이 운영하며 '간판 장사'를 하는 구조 속에서, 과연 의뢰인 한 명 한 명을 위한 '장인 정신'이 발휘될 수 있을까.
자신들이 저질러온 과오와 동일한 행태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또다시 자신들의 마케팅 먹잇감으로 삼는 것은 기만이다. 이는 의뢰인의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벌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자를 이용해 또다시 돈을 버는 '이중 착취' 구조나 다름없다.
'불량 로펌'이 '불량 로펌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슬로건은, 대한민국 법률 시장이 얼마나 상업화되었고 도덕적으로 마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들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들이 손가락질하는 '악당'의 모습이 거울 속에 비친 그들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