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근교 여행지로 유명한 온천 마을, 자오시(Jiaoxi/礁溪)에 다녀왔습니다.
유황 냄새 펄펄 나는 온천도 좋지만, 이번에는 피부가 매끈해지는 '미인탕'으로 유명한 자오시에서의 한적한 휴식을 선택했습니다.
보통 타이베이에서 자오시로 갈 때는 버스를 많이 이용합니다. 배차 간격도 짧고 빠르거든요. 하지만 버스는 예약제가 아니라 줄을 서야 할 수도 있고, 주말엔 터널 구간이 막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저는 기차(TRA)를 미리 예매했습니다.
기차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어 쾌적했고, 시간 차이도 버스와 크게 나지 않았어요. 기차역에 내려 마주한 자오시의 첫인상은 '한적함' 그 자체였습니다. 복잡한 타이베이와는 확연히 다른 공기에 벌써 마음이 놓이더군요.
호텔에 짐만 맡기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자오시 온천 공원입니다. TV 여행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자주 봤던 바로 그곳이죠.
공원 입구에 있는 무료 족욕탕에서 가볍게 발을 담그고 산책을 즐기다 공원 안쪽으로 이어진 '삼림풍여(森林風呂)'로 향했습니다. '풍여(후로)'는 일본어로 목욕을 뜻하는데, 대만에서는 보통 노천탕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일본식 남녀 분리 나탕(알몸 입욕)입니다. 시스템도 일본 온천과 거의 똑같아요. 바구니에 옷을 넣고 들어가면 탕 위주의 시설이 나옵니다.
주의할 점: 수건을 따로 주지 않으니 미리 챙겨가거나 입구에서 사야 합니다. 샤워 시설은 탕에 들어가기 전 간단히 몸만 헹굴 수 있는 정도예요.
탕의 종류도 다양하고 꽤 넓어서 온천욕 즐기기에 딱이었습니다. 젊은 층보다는 현지 어르신들과 저 같은 외국인들이 주로 있더군요.
유럽이나 중앙아시아의 미지근한 온천 수영장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자오시는 확실히 '뜨거운 물'입니다. 지지기(?) 딱 좋은 온도라 한국인 취향에 잘 맞습니다. 자오시 온천수는 무색무취의 탄산수소나트륨천이라 유황 냄새는 없지만, 하고 나면 피부가 정말 보들보들해집니다.
온천 후 허기진 배를 채우러 간 곳은 '싱바오(星寶)'입니다. 이란 현은 삼성파(쪽파)가 특산물이라 파 관련 요리가 유명한데, 이곳에서 총파이(파파이)와 총유빙을 주문했습니다.
가격도 저렴한데 맛은... 개꿀맛입니다. 너무 맛있어서 다음 날 또 가서 사 먹었을 정도니까요. 갓 튀겨 나왔을 때도 맛있지만, 식으면 더 맛있습니다. 취향대로 후추나 고추가루, 까만소스와 칠리소스를 뿌릴 수 있는데, 후추가루와 그 특유의 까만 소스가 감칠맛을 폭발시킵니다. 자오시 가시면 꼭 드셔보세요.
저녁이 되니 거리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야시장 골목을 중심으로 루미나리에 조명이 켜지는데, 마치 매일 밤 축제가 열리는 기분이었어요. 환상적인 조명 아래를 걷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습니다.
자오시 야시장은 규모가 엄청 크진 않지만, 소소하게 구경하고 간식 사 먹기엔 충분합니다. (단, 취두부 냄새가 강력한 구간이 있으니 숨 참을 준비 하시길!)
줄 서서 먹는다는 오징어와 옥수수 구이를 사 먹었는데... 솔직한 평을 하자면 '비추'입니다.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준비 속도가 너무 느리고 기다린 시간에 비해 맛은 평범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원래는 이란 시내를 구경하려다 귀찮아져서 근처 허우통컹 폭포(猴洞坑瀑布)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구글맵 평이 좋아서 가볍게 걸어갔는데, 가는 길이 인도와 차도 구분이 모호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가는 길은 평탄했는데, 산 입구에 도착하니 꽤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엄청나게 힘든 등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산책처럼 수월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도착하는 순간 힘듦이 싹 사라집니다. 생각보다 덜 유명한 곳인데 폭포 규모가 꽤 크고 장관입니다.
가장 위쪽 바위까지 올라가면 자오시 시내는 물론 멀리 바다(태평양)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위에서 보면 그냥 졸졸 흐르는 얕은 개울 같은데, 바로 끝이 낭떠러지 같은 폭포라는 반전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정말 많았는데, 물살에 휩쓸려 폭포 아래로 떨어지면 친구들과 영영 이별일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내려왔습니다.
제가 묵은 호텔은 방마다 개별 온천탕이 있고 지하에 대욕장도 따로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지하 대욕장에 이용객이 아무도 없어서 저 혼자 전세 낸 기분으로 즐겼다는 점입니다. 시설도 넓고 쾌적해서 오히려 붐비는 밖보다 나은 점도 있었네요.
자오시 온천수는 유황 냄새가 나거나 입욕제 푼 것처럼 물색이 독특하진 않습니다. 무색무취라 시각/후각적인 '온천 느낌'은 덜할 수 있어요. 하지만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면 확실히 피로가 풀리는 곳입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조용히 온천하고, 맛있는 파파이 먹으며 쉴 곳을 찾는다면 자오시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