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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Apr 14. 2022

등기이사잖아요, 등!기!이!사!

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몇 달 치 급여와 퇴직금을 못 받았다고 하였다. 노동청에 접수하셨냐고 물어보니 사장이 노동청에 신고하라고 하였다며 찝찝해서 변호사를 찾아왔다고 하였다.


사장한테 달라고 해 보셨냐고 하자 의뢰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장한테 퇴직금을 달라고 했더니, 사장이 등기이사인데 퇴직금이 어딨냐면서, '등기이사가 뭔지 찾아보세요. 등기이사'라고 하던데요?"


"회사에 임원 퇴직금 규정이 있나요?"


"그런건 잘 모르겠는데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우리 회사는 건설현장에 어떤 물건을 납품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제가 하는 일은 OO시와 OO시 일을 하고 있고요. 제 밑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 두 명 있는데 제가 상급자니까 너는 어디를 가라, 너는 어디를 가라, 이런 지시를 하죠."


"그럼, 선생님은 지시만 하나요?"


"아니요. 저도 같은 일을 합니다. 그래도 상급자고 경력도 더 많으니까 보통 제가 일을 분배하곤 하죠."


"만약에 오늘은 특별히 일이 없다라고 하면 출근 안 해도 되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당연히 회사에 출근해야하고요. 사실 현장에 머니까 바로 집으로 퇴근하고 싶은데 사장이 굳이 회사에 들렀다가 퇴근하라고 해서 그렇게 해 왔습니다."


"OO시를 담당하라는 건 누가 지시했나요?"


"그건 사장이 정하는 거죠."


"협의한 적은 없고요?"


"네, 그런 건 사장이 정하는 거지 협의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그럼 사실 그냥 보통 직원이나 별로 차이도 없는 것이 아닌가요?"


"따지고 보면 그렇습니다. 일은 똑같으니까요."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근로계약서와 연봉계약서도 있길래 어렵지 않게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계산해서 소장을 접수했다.


1심은 허무하게 끝났다. 회사에서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 재판 없이 무변론으로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그러자 회사에서 항소를 하였고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


항소심에서 회사는 의뢰인이 물품을 횡령한 것이 있다면서 경찰에 고소를 하였고 횡령금을 퇴직금과 상계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물건이라는 것이 고유번호가 있고 그 번호는 등록을 해야하는 것이라 횡령을 한들 팔아 먹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나중 일이지만 경찰에서도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나는 근로자의 임금과 퇴직금은 상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우리가 횡령을 하였다고 믿고 있다면 별소나 반소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소송비용 때문이었다. 소송에서 승소하면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데, 소송비용으로 청구할 수 있는 금액 중 제일 큰 부분이 변호사 보수다. 그런데 소송비용으로 포함할 수 있는 변호사 보수는 법으로 한계가 정해져 있어서 소송가액, 즉 소송의 금액이 클 수록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는 변호사 보수도 커지기 때문이었다.


가령, 내가 1억을 청구했는데 상대방이 상계하겠다고 주장하면 소송가액은 1억이 되지만, 상대방이 반소로 1억을 청구하면 소송가액은 2억이 된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우리가 '등기 임원'이므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반소로 횡령금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했다. 반소장은 재판이 있던 바로 전날 제출되어서 나는 실제로 반소가 들어온 줄 모르고 재판에 갔다가 뒷통수를 맞게 된 것이었다. 재판정에서 회사 측 변호사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던 그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상황이 되자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지금 하고 있는 소송이 1심이 아니라 2심이었기 때문이었다. 1심과 달리 2심에서 반소를 하려면 상대방의 동의를 받거나 이미 1심에서 다투던 내용일 경우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소는 각하된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반소에 부동의한다고 의견을 제출했다. 나는 '별소나 반소'를 해야한다고 주장했지, 별소를 제기하지 않고 반소를 제기했을 때 동의한다고 한 적이 없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1심은 재판 없이 무변론으로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반소 사실에 대해 다툰 적이 없어 원고 동의 없이는 반소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반소를 유도한 것이기는 했다. 대형로펌씩이나 선임했으니 민사소송법 기초를 테스트해 보고 싶은, 조금은 못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나는 의뢰인이 실제로도 이사였다면 이사회에 출석하여 경영에 참여한 적이 있는지 확인을 위해 '이사회 회의록'이나 '이사회 결의서'를 제출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사로 등기가 되어 있어도 다른 근로자와 동일하게 회사의 지휘, 감독을 받아 일을 하고,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아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면 근로자로 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이사회 회의록이나 결의서 중 어느 것도 제출하지 못했다. 


결국 2심에서 반소는 각하, 항소는 기각되어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고, 회사측에서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나는 바로 회사측에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회사가 반소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금액은 우리가 청구한 퇴직금액의 3배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가령 우리가 5천만 원을 청구하였다면 5천만 원짜리 소송이 2억 원짜리 소송이 된 것이다.


판결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퇴직금도 주지 않았고 어마어마하게 커진 소송비용도 주지 않았다. 


우리 의뢰인은 직원들과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퇴직 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곤 하였는데, 그래서 회사가 곧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신문 기사도 검색되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현재 회사 주소의 등기를 떼어 보았다. 회사 소유의 건물이었고 OO은행에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대출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OO은행에 채권압류및추심명령을 신청했다. 소위 통장 압류를 한 것이다.


대출을 받았는데 압류가 걸리면 은행에서는 회사 예금을 모두 대출금과 상계해버리고, 남은 대출금 전부는 즉시 상환하라고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장 이사를 앞둔 회사에서는 매우 치명적이다.


결국 회사에서는 판결금과 소송비용은 모두 지급하였다. 소송이 좀 오래걸렸는데, 오래걸려서 더 좋았다. 왜냐하면 임금과 퇴직금은 지연손해금이 무려 연 20%나 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1심에서 무변론 판결이 나왔으면 2심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이 반소 못한다는 기초적인 민사소송법 규정을 변호사만 수 백명이 있는 대형로펌이 몰랐다는 게 참 씁쓸했다. 내 수임료 10배는 받았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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