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아내)은 평범한 가정주부였고 남편은 부동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중개일로 돈을 버는 때보다는 거의 투자(혹은 투기)로 돈을 버는 때가 많았고, 그만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때가 많았다. 일 때문에 자주 같이 다니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내는 내심 찝찝했지만 남편이 일 때문에 만나는 것이라고 하니 그냥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남편과 그 여자가 같이 있는 것이 자주 목격되어 아내의 귀에도 들어오곤 해서 너무도 의심스러웠다. 아내가 남편에게 꼭 그 여자와 같이 다녀야하냐고 할 때마다 남편은 도리어 화를 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금방 잠자리에 들길래 몰래 남편의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아내가 짐작한 것이 맞았다. 남편과 그 여자가 주고 받은 카톡을 보니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아내는 카톡 대화 내용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혹시 몰라서 음성 녹음 파일도 옮겨 놓았다. 남편은 핸드폰에 통화내용을 자동으로 녹음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다음날, 아내는 인터넷으로 상간녀 소송에 대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 보았다. 검색을 해 볼 수록 걱정이 더 커졌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에 방문했다.
아내가 수집한 카카오톡 내용을 보니 과연 사귀는 사이가 분명했다. 그런데 아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변호사님, 만약에 이 여자가 남편이 유부남인지 모르고 만났다고 하면 어쩌죠?"
"남편 나이도 있고 일 때문에 자주 만나는 사이인데 설마 몰랐다고 할까요? 대화 내용을 자세히 보면 알았다는 정황이 있을 겁니다. 애초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애들 사진도 있고요."
아내는 통화 녹음을 들려주었다.
상간녀 : 나 지금 수원에 변호사 사무실 가서 상담을 받아봤는데..
남편 : 거기는 왜 가?
상간녀 : 아니, 들킬까봐 걱정도 되고...
남편 :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지들이 어쩔건데? 유부남인 줄 몰랐다고 하면 돼. 증거가 있어?
상간녀 : 그게 먹힐까?
남편 : 내가 판사보다 더 똑똑해. 판사 지들이 어떻게 알어?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지.
그 녹음을 들은 순간 소송을 어떻게 끌어나갈지 시나리오가 보였다.
나는 아내와 계약을 하고 상간녀를 상대로 해서 소장을 접수했다. 증거는 오로지 카카오톡 대화 내용만 넣었다. 카톡 대화 내용으로 볼 때 남편과 상간녀가 교제하는 사이가 확실하니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상간녀가 답변서를 제출했다. 남편과 교제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혼남인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아이들 사진이 있으니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던진 미끼를 정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물어버렸다.
나는 통화녹음을 속기사에게 의뢰해 녹취록을 만들어 증거로 제출했다.
"원고의 남편이 피고에게 '유부남인 줄 몰랐다고 하면 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피고는 유부남인 줄 알고 만난 것이 확실합니다. 피고는 진지한 사과와 반성은커녕 원고의 남편과 짜고 법원과 재판장님까지 속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피고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와 재판부를 우습게 여기는 행태를 위자료 금액 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후 피고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못했고, 한달 후 당연히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다른 사건에 비해 괘씸죄가 살짝 들어간 금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