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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Mar 30. 2022

용서해 줄테니 자백하라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아내는 남편이 의심스러웠다. 꼭 집어 증거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이런 저런 핑계로 늦게 들어 오기도 하고 가끔 외박도 하였다.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 같았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A였다. A는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요즘 유난히 남편과 있는 것이 목격되곤 했다. 남편에게 물어봐도 대충 일이 있어서 만났다고 얼버무리곤 했다. 이런 문제로 남편에게 코치코치 물으면 남편은 되려 화를 내었다. 사실 아내가 특별히 본 것도 없었고 증거도 없었기에 그 일로 싸워도 아내가 딱히 할 말도 없었다.


남편이 의심스러웠던 아내는 남편이 외출을 할 때 몰래 따라가 보았다. 


남편은 과연 A를 만나서 함께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A의 집인 것 같았다. 화가난 아내는 경찰에 신고했다.


아내는 출동한 경찰에게 남편과 A가 함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설명하였다. 경찰은 아내의 말을 듣고 함께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은 A의 집이 맞았다. 경찰과 함께 들이닥쳤을 때 남편과 A는 방 안에서 부부처럼 앉아 있었다. 옷은 모두 입은 상태였다. 경찰은 일단 남편과 A를 체포하여 차에 태워 경찰서로 갔다.


"그냥 차 마시러 갔어요. 간통 같은 건 한 적이 없어요."


남편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A도 마찬가지였다. 체포 당시 둘 다 옷을 입고 있었기에 간통의 증거도 없었다.


아내는 분통이 터졌다. 확실한데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화를 억누르고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솔직하게 얘기해봐. A랑 간통했다고 털어놓으면 용서해 줄게."


그 말을 들은 경찰 수사관도 남편에게 말했다.


"아내분이 용서해 준다 잖아요. 그냥 솔직하게 시인하세요. 아내 분이 용서하면 간통죄로 처벌 안 받으니까, 두 분이 화해하시고 집에 돌아가세요."


남편은 고민 끝에 딱 한 번 간통을 하였다고 시인을 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혹시 몰라 가지고 있으려고 하니 자백서를 써서 달라고 하였다. 남편은 고민하다가 아내가 용서해 준다고 하니 자백서를 써서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의 자백서를 수사관에게 주고 강력히 처벌해 달라고 하였다.


결국 남편과 A는 간통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제1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형법 제241조 제2항에 간통죄는 배우자가 용서한 때는 고소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사는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검사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에서는 배우자가 용서를 하였는 지를 판단할 때에는 당사자의 진실한 의사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행위의 외형을 신뢰한 선의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용되는 소위 '표시주의'이론은 혼인관계에서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용서한 것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간통 사실을 확실하게 알면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어야 하고, 둘째로 간통 사실을 알면서도 혼인 관계를 지속시켜려는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외면적으로만 용서를 표현하였거나 용서를 약속한 것만으로는 용서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대법원은 남편과 A가 체포 당시 모두 옷을 입고 있었고 간통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었으니, 아내가 자백을 요구할 때에는 남편의 간통 사실을 알면서 용서해 준다고 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용서해 줄 테니 자백하라"라는 말은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지 실제로도 용서를 해 준 것이라도 할 수 없다면서 공소기각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제2심 법원에 환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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