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챌린저스> 리뷰 2. 캐릭터
*본 리뷰는 영화<챌린저스>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패트릭이 틴더에서 데이트상대를 구해 호텔로비의 바에서 데이트를 하는데 타시가 호텔에 들어오면서 둘이 마주친다. 이 장면에서 패트릭은 뜬금없이 타시의 엄마 얘기를 꺼내는데 타시는 불쾌해한다. 타시가 이전에 하는 말을 보면 패트릭이 '바닥'에 있으므로 '위'에 있는 우리(아트와 타시)와 결승전에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한다. 이 대화 후에도 타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서 패트릭에게 '부탁이니까 x져' 라고까지 덧붙인다. 타시는 이 대화를 통틀어서 패트릭의 서열 속 위치를 확인시키고 자신들과의 사이에 선을 긋고 있다.
패트릭이 언급한 그 좋아보이시는 타시의 엄마 또한 '위'에 있다. 패트릭과 타시가 대화를 나누기 전 타시의 짐을 들고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패트릭과 아트가 타시를 처음 본 13년 전, 타시의 온가족은 타시를 따라다니면서 타시를 지원하며, 동시에 타시의 경제력에 '얹혀'살고 있다. 패트릭은 가족을 보며 타시 덕에 돈방석에 앉을 거라 조롱조로 말한다. 타시의 부상 이후, 타시와 함께 바닥으로 가라앉을 뻔 했던 타시의 가족은 이제, 아트의 우승행렬로 인해 타시와 함께 여전히 돈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다. 패트릭은 자신이 바닥에 있다고 끊임없이 선긋는 타시에게, '너와 너의 가족도 아트 아니었으면 나와 같은 위치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트를 도구삼아 지위를 높인 건 너의 진짜 지위가 아니라고, 패트릭은 타시를 조롱한다.
이 장면은 패트릭이 바닥에 있음(쓰레기)을 보여줌과 동시에, 패트릭과 타시가 어울리고 싸우는 이유에 서열중심적 세계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타시가 처음 패트릭과 이어진 데에는 패트릭이 그의 세계 내에서 지위가 높다는 것(성과 같은 집에 사는 그의 부모님, 테니스의 순위, 아트와의 서열 등으로 보여짐)이 영향을 준 면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
타시의 목에는 부상전에는 십자가만, 부상 이후에는 십자가와 원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다. 십자가는 수직선과 수평선이 교차한다. 수직선은 가부장주의적인 패트릭을, 수평선은 공감하고 연결을 중시하는 아트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십자가목걸이만 하고 있던 18세의 타시는 패트릭과 아트를 서로 마주보게(교차) 하니까. 하지만 결혼 후에 패트릭과 아트가 만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십자가 목걸이가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것을 보면 십자가의 수평선과 수직선은 패트릭과 아트로 대변되는 그녀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트가 연결에 욕망이 있고, 패트릭은 지배욕이 있어 다른 둘을 욕망한다면, 타시는 둘 모두가 있다. 타시는 신이나 엄마여서 두 백인꼬마를 돌봐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가지 욕망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 다른 둘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 삼각관계에 뛰어든 것이다.
다만 서열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된 이유나 배경은 패트릭과 전혀 다르다. 바닷가에서 패트릭이 타시에게 '왜 대학에 진학하냐'고 묻자 대학에는 'classes'가 있다고 대답한다. 'class'에는 수업이라는 뜻도 있지만 계급이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대학은-교육은- 대표적인 현대의 계층이동의 사다리다. 그래서 20대의 과반이상이 대학을 진학하는 한국사회는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높은 사회로 여겨지고, 실제로 다채로운 계급의 아이들이 만나 동등하게 능력을 겨루는 장이 되기도 한다.
타시가 이야기한 'there're classes in college'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로서의 대학을 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시는 테니스 기숙학교를 보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그 집안을 자신의 힘으로 어느 정도 살만한 가계상태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인종적인 한계*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에게 지금의 광고, 후원을 보낸 테니스를 못하게 되면, 그녀는 돌아갈 곳이 없는 현실을 잘 알게 된 것 같다. 타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패트릭에게는 테니스를 못하게 되어도 돌아갈 성같은 곳에 사는 부모님댁이 있고, 아마 부모님의 사업에서 한 자리 얻을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타시는 그 가족을 등에 업고 먹여살리고 있다. 타시는 테니스를 하게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지위를 backup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를 위해 대학을 선택한다.
타시의 수직선은 패트릭의 추상적인 지배욕과는 달리 현실적인 필요에서 나온 '지위상승' 혹은 '높은 지위의 유지'에 대한 욕망에 가깝다. 가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그녀의 능력으로 끝까지 달리고 싶고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지만 현실적으로 불안정한 지위를 보장할 한 두개의 보호막 쯤은 두고싶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대학이고, 다른 하나가 전통적인 신분상승의 클리셰,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타시가 신분상승을 위해 잘사는 집안의 패트릭을 골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위가 테니스 '순위'로 비유되는 영화<챌린저스>에서 순위가 높은 패트릭을 골랐다는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골랐다는 것이고, 타시로서는 딱히 필요는 없는(욕망의 대상이 아닌) 두 남자애중에 지위가 높은 사람을 골랐다는 건, 당시의 타시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불안정한 지위에 대한 이중 삼중의 백업이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시의 수직선은 패트릭의 수직선과 만나 충돌한 끝에 부러진다. 온건적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남성의 낮은 지위를 확인하는 타시의 독립성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훼손당한다. 가난과 인종차별에 성차별의 벽까지 경험한 타시는 결국 꺾이고 만다.
2025.11.14
트위터 등에 썼던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 퇴고 후 올려둡니다.
* 그녀가 relationship으로 묘사한 안나뮬러와의 단식경기에서 안나뮬러가 지자 그녀가 racist라서 괜찮다고 얘기한다. 백인인 안나뮬러가 타시에게 진 것을 분하게 여기는 이유가 자신이 무시하는 흑인에게 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타시가 사회에 나와 인종차별을 겪어왔기에 알 수 있는 것이리라. 또 후반에 패트릭의 차에 타면서 오래 얘기 못한다며 누가 창녀인줄 알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을 한다. 밤에 차에 타있는 여성과 남성을 보고 누가 여자가 창녀라고 생각해서 경찰에 신고할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밤에 백인남성의 차에 흑인여성이 타있으면 흑인여성을 창녀라고 생각해서 신고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타시는 그 밤, 아무도 없는 길에서조차 자신을 '흑인'으로 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