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 집중하는 사회

by 사유의 서랍

친구와 만나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수차례의 내 아이, 너의 아이들의 고민이 오가고 어릴 때 살던 곳과 지금 사는 곳, 주변의 부잣집들의 사례가 오간 끝에 친구가 말했다.


"그 집은 몇 대가 놀아도 먹고 살만큼 잘 사는데 그 돈으로 자식을 의대를 보내더라."


어쩌면 당연하고 어쩌면 의아한 이야기다. 의사가 잘 번다는 얘기는 누구나 아는 현대인의, 현대 한국사회의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다. 자식도 잘 살길 바라는 마음에 의사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부모의 마음이야 이해안될 일이 있을까. 하지만 몇 발자국 떨어져 보면 또 이처럼 기괴한 이야기가 없다. 자식을 의대보내는 결정에는 '돈을 잘 벌어야 잘 사는 것'이라는 판단, '의사는 돈을 잘 벌기위해 선택하는 직업'이라는 판단이 녹아있다.



우리나라의 150년은 '돈을 잘 벌어야 잘 사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권세가들이 서민의 쌀을 빼앗는 몇십년을 지나 남의 나라가 우리의 것을 빼앗는 35년을 지나니 기회주의자가 돈을 버는 현대를 맞이했다. 방구석에 들어앉아 삶의 깊이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내 자식 목구멍에 풀칠할 것까지 빼앗아가는 정치권력은 한낱 '생각'으로 막지 못했으리라. 보리 한 됫박 얻으려고 아내에 자식 이름까지 쓴 명부는 빨갱이, 부역자라는 근거가 되어 그들 가족이 한밤중에 몰살당하게 했다. 부잣집 아들, 정치인 아들이 군대를 안 갈 때 내 자식은 돈이 없어 군대에 가고 그 중 누군가는 의문사로 돌아왔다. 가난에는 부당함과 억울함이 붙었다. 돈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얻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7-90년대는 돈으로 점철되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금방 작아질 옷', '살만 찔 사탕' 따위를 아끼고, 물론 그보다 당신이 입을 옷과 신발, 가방을 아껴서 돈을 모으고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팔고 새 집을 사고 남은 차액이나 대출금으로 집을 더 사고 전세를 주었다. 전셋값이 오른 만큼으로 학원비를 내고 대학 등록금을 냈다. '코묻은 돈까지 긁어모아 목돈을 만들고, 목돈으로 집을 사고 팔아라' 메세지가 우리집, 옆집, 사돈과 팔촌, 사방팔방에서 신화처럼 울려퍼졌다. 그 돈으로 우리 세대는 딸들도 대학을 가는 세대가 됐다.


자, 이제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다. 우리의 부모세대는 평생 에니악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의 발전이 자신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없는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나의 세대는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에 들어오는 삶을 초등학교에 보내고 c언어를 배웠는데, 중년에 양자컴퓨터와 AI를 마주하고 있다. 이제는 프로그래밍언어를 배울 필요도 없다고 한다. 우리의 자식세대는 손안에 컴퓨터를 쥐고 태어나 아마 스무살이 되기 전에 실체가 없는 양자컴퓨터 이상의 것을 다루게 되겠지. 기술발전은 점점 빨라지고 이제 노년은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고들 한다.


정치는 규모의 경제를 말하며 '성장', '자본'이 더 나은 삶을 약속할 것처럼 국가경쟁력 성장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자본이 모이기 위해 인건비는 낮게 유지되고 인건비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정치는 법을 내어주고 재계는 뒷돈을 제공했다. 그렇게 모인 자본 중 일부는 눈부신 기술성장을 이끌어냈을지 모르지만 많은 부분 대기업을 재벌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돈을 벌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사고자 했던 1970년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욕망은 2020년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지주에, 억울하게 내 먹을 거리는 빼앗기지 않지만, 이제는 '포괄임금제'라는 이름으로 내 정당한 노동을 기업에 합법적인 '헐값에' 내어준다. 기술발전의 끝에 인간의 소외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기업에 인간은 소외된다.



그 속에서 개인은 여전히 돈과 성공을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 돈은 나만 번 것이 아니고 돈으로 사람들을 줄을 세우면 모두가 앞사람보다는 덜 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덜 버는 상태'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맨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행복할까? 맨앞에 계속 있으려고, 자식도 맨앞에 서게 하려고 아둥바둥 살고 있지는 않을런지. 앞으로 나아가려고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 다른 사람의 논문에 자식의 이름을 붙이고, 뭔가를 위조하고 비슷한 동료들끼리 비리를 교환한다. 돈을 향한 미친듯한 질주에 법과 도덕은 거시적으로든 미시적으로든 외면당하고만다.


잘 사는 집에서 '애매하게' 공부 잘하는 자식을 의대 보내려고 대치동 근처에 중3까지 살다가 경기도 외곽의 고등학교 근처로 전학간다는 이야기가 법을 건드리지 않는 선의 '팁' 수준으로 흔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데 '성공한' 의사의 직업 어디에 도덕이 있고 어디에 사명감같은 게 자리를 잡을까? '돈'과 '성공'의 상징같은 자리를 얻는 게 가족의 지상 최대의 목적이 된 삶에서 그 목적 자체가 가진 이유와 직업윤리 같은 것이 들어갈 데는 있을까. 그리고, 가능한 모든 투자를 받고 피부과와 성형외과에 지원할 학생이 의대에 붙는 동안, 응급실과 신경외과에 가서 사람을 살릴 의사가 될 아이는 의대를 붙을 수나 있을까.



사람을 살려야 하는 직업이 어쩌면 돈을 잘 버는 게 당연하고 또 그래야 할테지만, 어쩌다 돈을 많이도 잘 버는 직업이 되어서 '돈을 벌고 싶은', '그래서 성공하고 싶은' 집에서 자식을 의대를 보내게 된 걸까. 70년대 어머니, 아버지가 돈을 잘 벌고 싶었던 데는 부모님 세대의 억울함도 겪고 싶지 않은 마음과 더불어 '하고싶은 걸 마음껏 하고싶은' 욕망도 있었을텐데. 그 중에는 부모세대에 하지못한,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음악, 미술, 그 외에 흔히 취미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꿈들이 있었을텐데. 힘들게 많이 번 돈으로 자식은 왜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다시 돈이 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줄을 서게 되는 걸까. 그를 위해 정작 취미의 영역에 있어야 할 것들은 없고 도덕과 윤리 같은 것들이 여유로운 것들이 하는 한갓진 소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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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벌어도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가난하다.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바라보는 곳마다 결핍을 낳는다. 결핍에 집중하는 사회에는 결국 꿈과 희망과 철학과 도덕, 직업윤리가 사라지고만다. 그리고 그 사회에는 다시 자기성찰과 사유가 부족한 아이들이 자라나 결핍을 무기로 삼는다. 거기에 일베키즈, 나아가 지금의 2030남성들이 보인다.


사람답게 살고싶어 잘 살고싶었던 부모 세대의 욕망은, 이제 어떻게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 의 질문으로 옮아가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내신을 관리를 하고, 고등학교 내신을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을 하고초등학교에서 선행을 하기 위해 미취학 아동이 초등학교 수학을 배우는 무한 선행의 기차에 아이를 태우기 전에, 과연 그 선행이 가져오는 아이의 '삶'이 무엇인가를, 이제, 부모가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가 가져야할 부와 그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를 위해서는 어떤 직업이 어울릴지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를 위해서는, 부모가 자신의 삶부터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무엇을 위해 지금의 삶에 놓여있는지, 무엇을 위해 경주하고 있는지, 나를 보고 사회를 생각할 일이다. 내 욕망이 투영하는 나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성찰하고, 타인의 삶을 둘러보고 사유해야 할 때다. 나의 부모세대의 산물이 나를 잡아먹고 다시 내 아이까지 잡아먹지 않도록 막아주는 힘은 결국 내가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소통하고 연민하고 관계를 맺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2026.1.23

오랫동안 쓰던 글을 미숙하지만 일단 브런치에 내어놓아봅니다.



- 아이를 선행을 시키지 않으면 결국 내 아이만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학원을 보내더라고요. 저도 겁이 나서 수학문제집을 샀습니다. 지난해 과정을 복습하는데만 한시간씩 사흘을 쓰고 이미 배운 걸 틀렸다고 시무룩한 아이를 보고 집어치웠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공부를 잘했고 그래서 학원이나 과외없이도 대학을 갔지만요. 결국 내 발목을 잡은 건 '하고싶은 게 없다'였어요. 그래서 저는 결국, 아이가 하고싶은 걸 발견하는 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음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래서 언젠가 아이가 하고싶은 걸 발견했을 때,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덤빌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리고 하나 더 꿈이 있다면, 돈을 조금은 여유있게 벌어서, 아이가 대학을 가서 철학과, 사회학과를 가도 미래걱정을 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는 아주 큰 꿈이 있네요. 지금은 너무 크고 먼 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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