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영화 <씨너스:죄인들>(이하 씨너스)의 결말이 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0년대를 그린 영화 씨너스 후반부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흡혈하며 살고 낮에 해를 보면 죽는 대신 밤에는 더할 나위없이 강력한 자들이다. 불가능할 것이 없어보이는 뱀파이어에게도 금지된 것이 있는데, 바로 인간의 집에 초대받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일랜드계 백인으로 보이는 레믹은 스택과 스모크가 연 술집 앞에서 노래도 하고 애원도 하지만 그들이 들여보내주지 않아 술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뒷부분에서 들어오라는 소리를 듣고 뱀파이어들이 대거 뛰어들어와 벌어지는 난장판을 보면, '들어오라'라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을 막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의 '초대'는 씨너스 전체에서, 나아가 미국 민주주의 역사 전반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씨너스 초반을 보면 흑인들과 백인들은 짐크로법에 의해 분리된 공간을 이용하게 되어 있다. 짐크로 법(영어: Jim Crow laws)은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던 미국의 주법으로(출처: 위키백과 짐크로법) 법제화까지 해둔 미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을 보여준다. 마치 그들은 미국의 탄생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길에서 마주치지 않고, 다른 상점을 이용하며, 화장실까지 분리되어 있다. 지나가는 흑인을 백인들은 더러운 존재를 보듯 바라본다.
하지만 불과 30년 이전까지만 해도 흑인차별은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고 1870년대부터 시작된 '재건시대'는 미국 다인종주의의 물결 또한 불러온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일반 노동자로 돈을 벌게된 흑인이 늘어나자 이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발전하고 투표에 참여하여 흑인정치인 또한 당선된 것이다. 다인종주의의 물결 가운데 미국은 무엇을 '초대'했기에 50년 후 짐크로법이라는 악명 높은 법까지 탄생시키게 되었을까?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이하 <어떻게...>) 3장을 보자.
1890년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은 흑인이 주민 다수를 차지, 남북전쟁 이후 경제성장으로 흑인이 소유한 업체들이 늘어났다. 흑인들의 부를 기반으로 문학모임, 공공도서관, 야구리그, 흑인 소유의 신문 등 문화가 발전하고 흑인들의 교회들도 생겨났다. 가난한 백인 농민, 소작농의 지지를 받은 인민당 정치인들이 공화당과 연합전선을 형성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지지를 얻는다. 이들은 공교육을 확대하고 기업독점을 규제했으며 재건 사업 중단으로 약화된 투표권을 다시 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1894년 노스캐롤라이나 의회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1896년에는 주지사 자리까지 차지한다. 조지 헨리화이트는 유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하원의원이 된다. 인민당과 공화당의 연합전선은 지방선거제도를 다시 직접선거로 바꾸고 민주적인 선거법을 채택한다. 흑인공화당과 백인인민당은 노스캐롤라이나 전역에 걸쳐 많은 공직을 차지한다.
스모크와 스택이 태어나기도 전, 미국 남부는 비교적 인종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향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이 정치적인 입지를 갖게된 배경에는 미국 공화당이 있다. 반면, 공화당과 대립각을 세우던 민주당에게는 공화당의 성공이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이들은 공화당의 지지기반을 무너트리고자 하고, 법제와 비법적인 요소를 최대한 동원하여 공화당의 지지세력을 저지한다.
이는 민주당 기득권층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흑인지배에 대한 백인들의 두려움을 부추기면서, 이 땅에 정착하고 기초를 세운 것은 백인이며, 흑인들이 이제와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연설했다. 월밍턴 인구의 56퍼센트가 흑인이었고, 이들은 투표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므로 민주당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흑인지배'를 막을 수 없다고 여겼다. 붉은 셔츠단이라는 민병대를 조직하여 투표하러 가는 흑인들을 공격했고 민주당은 이 집단을 지원했다. 민주당 암살단이 투표소로 난입하여 선거관리원을 협박하고 가져온 투표용지로 투표함을 채웠다. 그로인해 민주당은 압승을 거두고 주 의회 118석 중 98석을 차지했다. 지지세력은 폭력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흑인 교회를 습격하고 흑인 소유 신문사를 불지렀으며 흑인 주민들 22명 이상이 살해되고 2천명 이상이 도시에서 도망쳐야 했다. 다인종 공직자들은 사퇴압박을 받고 도시를 떠났다. 쿠데타를 이끈 워델은 신임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민주당은 다수를 차지한 주의회의 권한을 통해 투표권을 제한하는 입법입법을 하고 이를 통과시킨다. 흑인 투표율은 1896년 87퍼센트에서 1904년 0퍼센트 가까이 떨어진다.
187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다인종민주주의의 시작을 민주당이 테러와 부정행위를 통해 무너트리는데 불과 10년이 걸리지 않는다. 이들은 내심 흑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백인들을 세력으로 집단화하는 방법을 사용해 KKK와 붉은셔츠단을 조직하는데 성공한다. 그를 통해 민주당은 본인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공화당의 지지세력인 흑인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여 투표를 방해한다. 나아가 헌법과 선거법을 수정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권을 '합법적으로' 박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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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저지한 것은 비단 흑인의 투표만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 전체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민주당이 저지른 것은 처음부터 대단한 형태의 테러가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추락의 두려움'을 입밖에 꺼내고 무정형으로 흩어져 있던 '부끄럽고 악한 마음'에 형태를 부여하였다. 1870년대 백인남성이 어쩌면 눈앞에 산재한 여러가지 해결할 일들 사이에 잊을 수도 있었을 두려움을 정치가 꺼내고 햇볕에 말려 공통의 의제로 제시했다. 당시 백인들의 심리에는 두려움 외에도 다양한 욕망과 어쩌면 정치적 올바름이 있었을텐데, 그 수많은 심리 속에서 가장 더러운 욕망을 꺼내 서로에게 확인시키고 더럽지 않다고 정당화시켜준 것이다. 민주당이 차별주의자에게 포획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다르게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을 포착하고 가장 저열한 심리로 집단화 한 것이다. 단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민주당이 미국정치에 '초대'한 것은 흑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다. 민주당은 혐오와 차별을 '포착'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문을 연다. 혐오와 차별을 지지하고 지원함으로써 백인남성집단의 혐오와 차별 행위에 '정치'라는 옷을 입혀준 것이다. 민주당이 차별주의에 확성기를 대주고 정당화하지 않았더라면, -내심의 불만이 외부로 표출되지도 않아 집단이 되기도 어려웠겠지만- 세력이 커지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무엇보다 테러를 '당당하게' 일삼지 않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혐오와 차별에 정치의 문을 열고 초대한 결과, 흑인들의 투표는 불가능해지고 미국의 재건시대의 다인종주의 물결은 그대로 막혀 썩어버린다. 그렇게 영화 씨너스에서는 흑인들이 자신들을 위한 정치와 자신들의 소유를 잃고 KKK단의 위협 속에 목숨을 위협당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이런 배경에는 실제 역사에서 민주당이 백인남성집단의 혐오와 차별을 꺼내고 거기에 부여한 정당성이 깔려있다.
2025.7.15
달리 매국노가 있는게 아니다.
* 네모안의 내용은 책의 3장의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외의 내용은 제 생각입니다.
- 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