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문을 열지 마오 - 2

by 사유의 서랍

- 1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osorap/66



1870년대 미국의 민주당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혐오와 차별에 멋진 옷을 입혀주고 정당성을 부여한 후 '정치의 공간'의 문을 열어 초대한다. 그 결과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는 마치 자신도 의미있는 가치인양 다른 가치들과 대등하게 자리잡는다. 누군가의 정의와 다른 누군가의 정의가 토론와 합의의 장을 통해 가장 시급하게 시행될 것인가 결정을 해야할 정치의 공론장이 순식간에 정의와 부정이 대등하게 싸우는 개싸움의 정쟁터가 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KKK단이 사람을 죽이고 의회에서는 흑인이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아마도 미국 정치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정확히 백년전의 미국상황과 정반대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년 전 남부의 주정부를 뒤덮었던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를 이제 공화당이 가져와 백악관의 문을 열어주었다. 백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흑인의 지지를 받던 공화당은 흑인과 이민자를 전방위적으로 공격하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테러를 지지하던 민주당이 사회적약자의 편이 되어 있을까.


공화당이 백년전 민주당의 기치를 가져오기까지 왜 그러했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는 4장을 잠시 보자.

공화당은 1930년대 경제공황이 발생하면서 다수정당의 지위를 잃는다. 1950년대 공화당은 기존 유권자 집단의 이해관계와 영향력,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경제 엘리트 집단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광범위한 유권자 계층을 끌어들일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공화당은 '장기남부전략'이라 불리는 전략에 착수한다. 백인정당으로 거듭남으로써, 평등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빼앗긴다고 생각하여 분노와 혐오를 느끼는 남부 지역의 백인들을 끌어모으는 것이었다. 1964년 이후 민주당이 시민권 혁명의 바람을 타고 시민권 정당이 되면서 흑인 유권자의 지지를 가져온 반면 공화당은 인종적 보수주의를 취하여 1964년 이후 모든 대선에서 백인 유권자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그렇다. 공화당이라고 다를 바 없다. 정당이 권력을 잃기 시작하는 시점에 권력을 잃기 싫은 -민주주의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정치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정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숨어있는 지지자를 만들 생각을 한다.


정당이 권력을 잃는 순간이 올 때, 책<어떻게...>는 평화로운 권력이양의 전제조건으로 몇가지를 들고 있다. 먼저, 앞으로 다시 승리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때, 두번째, 권력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다. 공교롭게도 백삽십년전의 민주당과 70년전 공화당은 권력이양을 해야하는 시점이었다. 백년전의 민주당은 -1에서 보았듯이- 흑인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에게 열세를 면치 못했고, 권력이양은 백인지배를 전복할 것이라 여겼다. 그에 따른 위기감으로 민주당은 법과 불법 모두에서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백인남성의 극우화'를 선택한다. 불과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공화당에 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공화당도 평화로운 권력이양에 실패하고, 놀랍게도 그들은 백년전의 민주당과 똑같이 백인남성의 극우화를 선택한다. 공화당은 흑인과 이민자에게 백인의 '영광'을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법을 쓴다.


로널드 레이건은 남부전략을 이어받아 1960년대의 시민권법과 투표권법에 반대하며 1980년대의 대선운동에 '백인기독교도전략'을 추가한다. 카터행정부는 인종차별이 여전히 남아있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미 국세청이 부여한 세금공제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사립 기독교 학교들을 인종적으로 분리하지 못하도록 막는데, 이 정책으로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이 정치화한다. 그 중 다수파가 공화당과 손을 잡고 레이건의 선거운동에 뛰어들고, 레이건은 복음주의자들의 의제를 다수 공화당 공약에 포함시킨다. 레이건은 남부 백인과 복음주의 유권자를 공화당으로 끌어들여 남부백인들의 지지율 72퍼센트, 백인 복음주의자의 지지율 80퍼센트를 기반으로 1984년의 재선에 성공한다. 이는 공화당의 '백인을 향한 거대한 전환' 전략의 거대한 흐름에도 이어져 공화당은 이후 대선에 승리하고 1994년에는 하원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백인을 향한 거대한 전환'은 공화당 지지율을 높이면서 동시에 백인 다수의 '인종적 분노'를 키운다. 인종적 분노는 흑인에 대한 역차별이 존재하고 차별방지정책에 힘입어 흑인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일련의 생각을 말한다. 백인사회의 인종적 분노에 공화당은 '포획'된다.

백년 전 민주당의 전략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민주당은 직접적으로 폭력적, 법적 테러에 뛰어든 반면, 백년 후의 공화당은 불만이 이미 움트고 있던 백인 기독교 세력의 의제를 가져옴으로써 '포획'된 형태를 띤다는 점이 있다. 극우화하는 세력에 포획되어 정책을 펼침으로써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끌고온다. 그리고 또하나 다른 점은, 남부 일부 주의 극우화로 나타났던 백년 전과 달리, 1980년대 공화당은 극우세력의 백악관 입성까지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레이건은 극우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선거에 당선된다.


민주당의 버락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2012년, 공화당은 선거분석-RNC의 부검보고서-에 착수한다. 이 보고서는 백인유권자에 집중한 공화당의 전략을 비판하며 백인이 아닌 유권자를 적극적이고 포용적으로 흡수해야 함을 주장한다. 반면 지방의 공화당은 아시아, 라틴, 흑인의 유권자 집단이 백인의 유권자 수를 넘어서서 선거에 패하게 되자, '유권자를 줄어들게 하는' 전략을 시행한다. 2011-2016년 사이 투표자 신분확인법을 통과시켜 투표를 어렵게 만든다. 이는 두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먼저 투표사기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정책 시행이 편향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유효한 신분증이 없는 흑인, 라틴계 유권자 수는 같은 백인 유권자 수의 두배를 넘었다. 유색인종 유권자 억압은 사전투표기간 축소, 중범죄자 투표권 박탈법으로도 이루어졌다. 이는 백여년전 민주당이 시행했던 인두세와 읽고 쓰기 시험의 변형이었다.

극우세력의 흐름은 버락오바마의 당선으로 주춤하고, 이에 공화당 지도부는 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하며 패배원인을 분석한다. 이 분석은 백인복음주의기독교세력에 의지하고 있는 공화당의 전략을 비판하고, 공화당의 다음 대통령후보경선은 이 부검보고서를 수용한 후보와 정반대로 움직인 후보로 나뉘게 된다. 반면 지방의 공화당은 백년 전 남부의 민주당 정부와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었는데, 1960년대 시민권운동으로 수정헌법 제14조와 제15조의 적용에 따라 폐지되었던 인종차별적인 주법들이 방법을 바꿔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2016년 대선 예비선거에서 젭부쉬는 부검보고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서 백인들의 불만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화를 모색했다. 반면 트럼프는 공화당 예비선거 유권자 집단을 장악한 인종적 보수주의자의 표를 얻기 위해 인종차별적이고 민족적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짐으로써 예비선거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의 승리는 단순히 그의 지지율을 올리는데 그치지 않고 공화당 전체를 극우화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거대대체이론'을 믿었는데, 이 이론은 미국의 엘리트 집단이 토착 백인집단을 내쫓기 위해 이민자들을 동원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파 언론은 이들을 부추기며 거대대체이론을 팔아먹는다.

우리가 흔히 '바닥정치'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2016년 대선의 과정을 통해 볼 수 있다. 공화당 지도부가 극우세력의 지지에 더이상 포획되지 않으려고 했을 때, 남부 공화당은 백년 전 민주당이 직접적으로 민주주의를 해쳤던 방식을 재현함으로써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단지 남부의 극우세력만의 정치가 아니었음을, 2016년 공화당 대선예비선거후보인 트럼프가 증명한다. 트럼프는 극우세력에 의지하지 말라는 부검보고서를 전면으로 부정하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지속한다. 그는 예비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아가 대선까지 승리해 대통령이 된다.


트럼프의 당선은 사회에 두가지 메세지를 던진다. 혐오와 차별의 정치에 비판적이었던 공화당 내부세력은 몰락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세력은 승리를 거둠으로써 혐오와 차별의 정치가 '먹힌다'는 것을 미국사회에 증명한 것이 그 하나다. 백년 전 민주당이 남부지방정치에서 퍼트렸던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는 이로써 미국 전역에 퍼진다. 또하나의 메세지는 혐오와 차별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도록 둔다면, 혐오와 차별이 정치의 장에 입장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아가 다른 가치와 정의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는 수많은 가치들 중에 지금 정책으로 '시행되어야 할'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그동안은 공론장에 입성한 가치들의 우열을 따지지 않았다. 가장 다수가 원하는 가치가 정책으로 시행되기 위한 논의와 투표를 거쳤을 뿐이다. 하지만 혐오와 차별이 정치의 공론장에 입성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칠수 있다는 선언이 과연 공론화되어야 하는 '가치'인가? 다수가 원하기에 정책으로 시행될 때, 사회는 과연 어떤 종류의 정의가 실현되는가?


혐오와 차별이 공론장에 입장할 때, 우리는 이것이 과연 '정의'인가를, 논의가 필요한 다른 담론들과 과연 동등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누구나 아는 부정이기 때문이고, 그대로 논의되었을 때, 다른 정의를 누르고 가장 시급하고 가장 다수가 원하는 담론으로 우선될 수 있음을, 우리는 2016년 미국 대선을 통해 목격했기 때문이다.




2025.7.22

누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흘러가는 불만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세상에 나와 총이 되었다.



* 네모안의 내용은 책의 4장의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외의 내용은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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