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문을 열지마오 -3

by 사유의 서랍

님아 그 문을 열지마오 -2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osorap/67


2016년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극우정치의 백악관 입성과 혐오와 차별이 다른 가치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는 사회가 극우화하고 있음을 그의 당선이 보여주는 것이며, 그로 인한 정치의 우경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보수화가 그렇다. 러스트벨트는 미국의 중서부와 북동부 일부를 포함한 지역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후반까지 철강, 자동차 생산, 석탄 채굴, 원자재 가공에 기반을 둔 산업의 중심지였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들 지역은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해외 이동, 중국의 제조업 부상 등으로 급격한 쇠퇴를 겪었다. 제조업 부문의 고용은 1969년과 1996년 사이에 32.9% 감소*했고 이는 해당 지역 인구의 감소, 범죄의 증가, 교육의 질 저하와 가정의 붕괴로 이어졌다.


러스트벨트의 인구가 감소하고 이 지역이 사회, 경제적으로 쇠락하는 동안 민주당은 전통적인 자신의 텃밭이었던 이 지역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이들 지역의 하원의원 의석수를 잃은 것 또한 그 배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물론, 노동운동이 강성이었던 이 지역의 특성상 유세를 돌지 않아도 민주당이 당선되어왔던 역사의 영향이 클테지만. 그 빈틈으로 기독교 복음주의가 세를 넓히고 이는 지역의 보수화를 이끈다. 그리고 트럼프가 전략적으로 파고든다.


트럼프가 이들의 표심을 가져온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외면받던 이들을 주목하는 것은 또한 정치의 할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단지 이들의 표심을 '가져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왜곡하였기에 문제가 된다.

지역 산업의 쇠퇴와 더불어, 방어막 역할을 하던 노동계층의 약화는 유권자들이 사회주의와 이민을 이 마을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경고하는 트럼프식 메시지에 쉽게 동조하게 만들었다.
- History Reveals How Donald Trump Captured the Industrial Heartland—And a Path Forward for Democrats https://time.com/6958635/trump-biden-midwest-history/

러스트벨트의 성향은 있는그대로의 혐오와 차별은 아니었다. 쇠락한 마을에 기독교복음주의가 세력을 넓히면서 낙태운동반대와 같은 보수화 경향이 나타나긴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기독교 보수주의가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고, 보수화가 반드시 모든 화살을 흑인과 이민자로 돌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는 이 지역의 민원을 받아들이는 척 이 지역의 쇠락의 원인을 '사회주의'와 '이민'으로 돌렸다. 러스트벨트의 쇠락은 정확히는 복지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날것의 자본주의의 결과이며,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빠져나간 일자리는 이민자들이 아니라 노조가 없는 다른 나라의 저임금노동자에게 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몰락한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는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은 미국 정부에 분노해야 하며, 저렴한 노동을 찾아 자신의 지역을 버린 자본을 탓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들의 추락의 공포를 가지고 와서 정부로 가야할 분노를 굴절시켜 사회적 약자에게 향하게 한다. 노동운동을 통해 이 '트럼프식 세뇌'에 방어막이 있었던 위스콘신이 러스트벨트 지역에서도 희귀하게 우경화에 저항하는 지역으로 남은 것은 트럼프의 '작업'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정확한 방증이다.

The combination created the rare Heartland community that resisted the pull to the right that lured residents of the white working-class towns that were once the bedrock of the New Deal coalition.
- History Reveals How Donald Trump Captured the Industrial Heartland—And a Path Forward for Democrats https://time.com/6958635/trump-biden-midwest-history/

우리가 트럼프의 2016년/2024년 대통령 당선과 그 과정을 보면서 알아야 할 것은 그가 포착한 극우세력의 감정이 아니라 그가 그 분노를 '이용한 방식'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집권을 위해 러스트벨트와 백인복음주의세력의 분노를 세력화했다. 그리고 그 분노를 혐오로 굴절시켜 자신의 정적-민주당-의 지지세력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게 하고 이를 정당화했다.



정치가 문을 여는 행위는 밖에 이미 존재하는 뱀파이어를 문 안에 들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치는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일반인을 '뱀파이어로'로 변신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치가 험한 것에 문을 여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어떤 의도로 분노의 문을 열고, 분노를 혐오로 변신시켜 집안에 들인다. 그 의도는 '독재'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버려진 분노'를 주워 정적 혹은 정적의 지지자들에 대한 혐오로 굴절시킨다. 그동안 외면당하던 분노들은 자신이 정치인의 독재를 위해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분노를 알아주었다며 쉽게 독재의 지지자가 된다. 그리고 나아가 독재에 저항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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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여성가족부에 “남성들이 특정 영역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는데 남성 차별 부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의 2030남성들의 극우화의 원인으로 '스스로' 주장하는 남성 역차별을 조사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차별을 받아선 안되며 정치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은 중요한 감각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남성역차별'이 정치에 발들인 2030남성의 분노가 혐오로 '굴절'된 형태로 만들어진 의제라는 점이다. 분노의 원인은 사회변화와 불경기에 있는데, 어떤 '의도'에서 이 원인은 '여성'으로 굴절되었다. 즉, 남성역차별은 정치적으로 성차별의 의제가 아니라 정치에 입성을 앞둔 혐오다. 그것을 국무회의에서 정책으로 논의하는 순간 우리는 혐오에 제대로된 초대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님아, 그 문을 열지 마오.
그 문 뒤에는 험한 것들이 옷을 꾸며 입고 인간인 척 하고 있다오.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에 온 집안을 들쑤실 생각을 하며 신이 나 있다오.
그것들이 들어오면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뿐 아니라
이제 그것들이 집안의 주인인 양 행세할 것이라오.




2025.7.29

님아, 그 문을 열지마오 완.



* Kahn, Matthew E. "The silver lining of rust belt manufacturing decline." Journal of Urban Economics 46, no. 3 (1999): 360–376.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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