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 전략 -상

by 사유의 서랍

정치인이 권력을 잃을 위기에서 마찬가지로 사회적 지위가 추락하는 집단의 분노를 이용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분노를 굴절시켜 현재의 지배층을 향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향하게 하는데, 여기에는 또하나의 전략이 숨어있다. 피해대상이 되는 집단을 분리하는 전략이다. 혐오가 향할 집단을 (분노하는) 집단에서 분리하고, 외집단을 타자화한 후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것이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는 인간의 진화가 서로에 대한 관용에서 나온다고 말하며, 그와 반대되는 불관용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비인간화'를 지적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폭력의 허용은 집단의 자멸을 불러올 수 있는데, 이 폭력이 외집단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대하기 때문에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이유에서 인간 집단 내에 '집단의 분리'가 일어나고, 문제의 원인이 '분리된 집단'에 있다고 폭넓게 원인이 공유될 때, 특정 집단에서 외집단을 향한 폭력이 일어난다. 집단이 -진화와 반대인- 자멸할 때 그 원인에 '분리', 그리고 '비인간화' 작업이 있다.



일본의 근대사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가 '분리'다. 불경기가 오거나 지진으로 인해 그동안의 인프라가 무너져서 소란이 생기면 이를 내부적으로 인프라를 강화하거나 안정적인 복지를 제공하여 해결하지 않고 적을 만들어 외부로 원인을 넘겨버린다. 대표적인 예가 1920년대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대학살이다. 예측되지 않은 대지진으로 목조가옥들이 부서지고 가스누출 등으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을 당시 일본 내무성은 직접 해결하기 보다 조선인의 문제로 돌린다. 내무성은 '재난을 틈타 폭동을 일으키는 조선인 집단을 주의 관찰하라'는 내용을 하달하고, 이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루머와 함께 조선인학살이 일어나는 기폭제가 된다. 일제시대 하에서 징용으로 끌려오거나 생활기반(논 등)을 수탈당해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 집단은 이전에도 사회적약자의 지위에 있었는데, 일본정부는 자기들에게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자 이미 사회적약자인 조선인을 이용한 것이다. 신문보도, 루머확산 등으로 적극적인 '비인간화'작업-조선인들의 비인간적인 범죄를 반복하여 보도함으로써 조선인들을 '인간'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사회는 조직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살해한다.


시작은 정치집단이 퍼트린 루머 하나지만 도쿄에서 무수히 발생한 민간이 꾸린 자경단들이 이를 재생산하고 조선인을 색출하고 죽여, 수백에서 수천으로 추정되는 학살이 일어났다. 집단적인 범죄행위를 경찰이 묵인은 커녕 조선인의 폭동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발표하여 학살을 부추겼다. 관동대학살은 치밀하게 계획된 '비인간화'를 이용한 정치적 해법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인간화로 인한 분리의 강화,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외부화는 빈번하게 이용되었다. 이는 최근 버블붕괴로 인한 장기적인 불경기에도 '혐한'으로 이어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업보가 돌아오는 현재다. 이들이 외집단을 만들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조선인이 말그대로 사회적약자였기 때문이었다. 조선인은 민족이 달랐고(외집단이 되기 쉬웠고), 실제로 가난했으며 언론과 그에 따른 여론을 수정할 파워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인간이 아닌' 죽어도 싼 물건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고, 당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온갖 문제를 가져다 버리는 쓰레기장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혐한은 이어지고 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엔화가 싸지면서 일본의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일본의 GDP는 여전히 한국보다 높지만 일본인들은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일본여행은 늘어났고, 일본인들은 쉽게 사지 못하는 명품들을 쓸어담아 한국에 돌아간다. 그들의 혐오를 가져다 둘 쓰레기통의 벽이 높아지고 고급스러워졌다.


오랜 시간 정부와 언론이 합심해 '분리'하고 외집단을 만든 후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정부와 지배층을 향한 비판의 시선을 돌려왔다. 문제는 한국의 문화가 해외에 끼치는 영향력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뉴스에서 혐오를 배우고 드라마에서 한국을 접한다. 접촉은 관용을 부른다. 관용은 비인간화를 약화시킨다.* 혐오에 '선망'이 섞이기 시작했다. 재일한국인의 범죄를 아무리 보도해도 채존효뿌상의 웃음을 이길 수 없다. 이제 '분리'도 힘들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것이 이전처럼 쉽지 않아졌다.


일본은 그들 스스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개발하지 못한 채로 사회문제를 가져다 버리던 쓰레기통이 사라지는 현실을 맞이했다. 사회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그를 논의하는 장을 만들지 않은 사무라이의 후손들은 그대로 뿌리부터 썩어가고 있다. 여전히 혐오를 남발하여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이것이 분리 전략의 업보다. 분리하고 외집단에게 엄한 화풀이를 하는 순간 작은 화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내부의 수많은 불씨를 없애지 못하고 속에서부터 폭발한다. 정치가 썩은 것은 정치를 도려내고 바꾸어 살아남을 수 있다. 자본이 썩은 것은 제대로된 정치를 만들어 규제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시민 계층 내부가 썩어버린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문제를 직시하고, 원인을 파헤치고, 원인이 지배층에 있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도록 시민을 교육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사회는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해나가며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2025.8.5

누군가를 학살하면서 '전략'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비인간적인 일이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바네사 우즈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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