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1

극우세력 미시적으로 바라보기

by 사유의 서랍

극우의 폭동은 마치 시대와 그 시대를 타고난 특정 세대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 배경에는 권력을 잃기 싫은 정치인의 욕망과 그에 기생하는 언론권력의 기획과 홍보가 복잡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권력을 이양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혐오세력과 손을 잡는 것이 아니고, 모든 불경기가 나타나는 지역에서 분노를 혐오로 치환하지 않으며, 사회적 지위의 하락을 경험하거나 앞둔 세대가 전부 극우화하지는 않는다.


권력은 끊임없이 옮겨다닐 것이고 호경기가 있으면 불경기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는 끊임없이 변화가 생긴다. 그때마다 극우세력이 발생해서 사회적 약자를 향해 역차별이라 소리치고 폭력을 행사했다면 사회는 지금과 같은 규모로 크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정권은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했고 후에 재선에 성공했으며, 어느 시대 언론은 권력에 비판적인 그들의 일을 제대로 해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해보자. 언론과 정치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KKK는 탄생하지 않았을까? 1960년대 공화당이 자신의 권력보다 민주주의 수호를 더 중요시했다면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버락오바마가 당선되고 공화당은 한차례 반성의 시기를 맞이한다. 그때 공화당을 이끌던 몇몇 이들은 혐오와 손잡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분석보고서를 수용하여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지역당과 주지사 차원에서 지역의 혐오를 부추기는 연설이 이어졌고, 이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전국적인 당 차원의 정치로 다시 끌어올린, 트럼프가 다음 대선의 후보로 당선된다. 공화당의 지도부가 민주적인 정치로 방향을 튼다한들 혐오와 새로이 손잡는 지역의 실물정치의 방향까지 틀 수는 없다. 그리고 지역 정치는 지역민들이 가진 정서에서 멀어질 수 없다.


극우세력이 크지 않으면 정치는 '선동'만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극우세력은 기차의 동력과도 같은 존재다. 정치가 운전을 하고 언론이 마중물을 부으면 그를 불씨로 거세게 타오를 지역주민들의 '세력화'가 없이는 혐오정치가 일상에 끼어들지 못하고, 일상에 끼어들지 못하는 정치는 법적으로, 민주적으로 거세되기 마련이다. 주지하다시피, 러스트벨트에서 몇몇 지역은 공화당의 전략에 놀아나지 않고 자신의 분노가 혐오정치로 이용되는 것을 거부했다. 극우세력은 정치와 언론에 이용당한 무해한 어린 양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효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정치와 언론과의 로그롤링에 뛰어든 또다른 악마다.



2025.9.1

이전까지 거시적으로 바라보던 문제를 미시적으로 디비파봅니다


- 지난주에 일이 많아 화요일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8.26일 연재분을 오늘에서야 올립니다. 내일 연재분은 제대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 '나'의 이름은-2편에서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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