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 미시적으로 바라보기
*이 글에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이름은 -2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osorap/89
한나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이 악마의 하수인들의 '악의 평범성'을 지적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 그의 행동 뿐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 한나 아렌트, Responsibility and Judgement, ed.Jerome Korn, pp159-160
악의 평범성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상에 스며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춘 자들, 그 무능에 대한 보고다.
이 모습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가시화한다. 루돌프회스는 성실하게 일하고 있고 그의 아내 헤트비히는 집안을 가꾸고 아이들을 키우는 여느 가정집의 모습이다. 헤트비히는 동네 사람들과 소소하게 옷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주말이 되면 루돌프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의 강으로 수영을 하러 간다.
헤트비히가 자기 몫으로 챙겨온 비싸보이는 모피옷의 주머니에는 누군가 쓰던 것 같은 립스틱이 들어있다. 루돌프가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강에는 갑자기 검은 잿물이 흘러내려오고 루돌프는 아이들을 배에 태워 검은 잿물을 피해 집으로 간다. 집에 가서 씻는 그들의 뒤로 끊임없이 깔리는 총소리, 누군가 우는 소리와 비명소리, 엔진소리는 그들 가족은 모르지만 보는 이에겐 끊임없이 들려오는 '외부'의 소음이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아하는 립스틱과 피해서 도망치는 '무언가'의 재,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루돌프와 헤트비히의 가족들이 끊임없이 '인식'의 범위 밖으로 내몰고자 하는 그들의 행위 그 자체다. 루돌프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령관이고, 헤트비히는 수용소 벽에 붙은 관사를 '수용된 유태인'의 노동력을 통해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루돌프와 헤트비히 가족은 그들 자신이 한 행위-학살과 수용소로 인한 이익의 수혜-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루돌프는 가스실과 화장 시설을 효율적으로 확대하고 헤트비히는 가스실에서 나온 옷, 귀금속들을 가져오면서 끊임없이 모른척하는 그들 자신의 행위들을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들은 참아내지 못한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루돌프와 헤트비히의 아이는 매일같이 소음에 자지러지듯 울고, 그 집의 하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어 알코올중독이 되고 있다. 헤트비히의 엄마조차 벽을 너머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무언가'를 태우는 연기에 견디지 못하고 편지를 남기고 떠나버린다. 루돌프회스의 가족과 아우슈비츠 사이에 세워진 높은 벽은 그들 각각의 마음 속에 만들어진 '정상적인 인식'과 의식 사이에 만들어진 벽과 같다. 그들은 벽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식부터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유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현재 위치(악인)를 판단하지 못한다.
우리는 관습과 상투로 반복되는 일상을 버텨낸다. 그 관습과 상투에 침입하는 이데올로기적 편협함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타인에게 조금의 손해도 끼치지 않을 때 용인되는 것일지 모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손해에 눈감기 시작했을 때, 어느새 나치의 시대 수많은 아이히만들이 넘었던 아우슈비츠의 벽을 넘어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 스며든 악을 사유하지 못하는 무능함이 만들어낸 악행이다. 보기에는 그저 평균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악랄한 폭력의 선두에 서게 되는 이유이다.
2025.9.2
빛좋은 형이상학은 형이하학의 진실을 덮지 못한다.
* 루돌프 회스와 한나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목격한 아이히만은 친근한 사이였다고 한다. 아이히만이 거듭된 학살을 목격하며 '힘들어하자' 회스가 자신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시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지 않게 해주었다고. 아이히만은 학살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저지른 악행을 인지하지도 못했다는 충격에서 나온 그의 무사유성에 대한 보고서가 지금도 이렇게 시사점을 주는데, 그런 아이히만이 보기조차 힘들어한 학살을 루돌프회스는 가스실을 확장하고 효율적으로 더 많이 태울 수 있는 시설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도 자신의 악행을 깨닫지 못했다. 아이히만이 타자와 자신의 차이를 넘어선 사유를 하는데 실패했다면, 루돌프회스는 '인식'에서부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 존오브인터레스트의 포스터 중 하나가 인상적이다.
실제 영화 장면에서 가운데 빈 자리는 수용소의 소장이자 가족의 아빠가 서있는 곳인데, 그 자리가 비어있다. 그 자리는 다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쩌면 가자지구의 병원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가 저기에 새로 그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경계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저 자리에 새로이 그려질 자격이 있다. 그것은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2024.06.08에 이전 블로그에 썼던 리뷰를 수정하여 이 글에 남겨둡니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