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3

극우세력 미시적으로 바라보기

by 사유의 서랍

* '나'의 이름은 -2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osorap/91



어떤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불가능하거나 나아가 도피해서 사유를 막아버리는 무능은 악의 첨병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인 '사유의 무능성'(악의 평범성)을 구성한다. 그런데, 사유가 무능하면 모두 악마가 되어버리나? 사유에 무능한 사람들을 뽑아서 악을 행하게 이용하면 악의 세력들은 모두 사회에 혐오를 퍼트리는데 성공하는 걸까? 악의 하수인들은 '멍청한' 사람들인 걸까?



한나아렌트의 '사유의 무능성'은 다음과 같다.

...(아이히만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하다)...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화열 교수는 "특별히 천박했던 아이히만은 '사유'도 '의지'도 '판단'도 할 수 없었다"는 한나아렌트의 강연을 인용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이가 없으면 소통이 없고 그렇다면 말과 행위도 필요없었을 것이라 한다.

누군가는 아이히만을 '평범한 배달부'의 성품을 가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솔직하고 성실했으며, 법정에서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다고 강조한 바도 있다. 다만 칸트의 실천이성을 단순한 (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법의 배후에 있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그 맥락의 본의를 읽지 못하고 그를 자신을 강변하는 논리- 히틀러에 대한 '복종'과 '이성'적 판단의 감성(학살에 대한 슬픔)에 대한 우위- 에 써먹는데 그쳤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 그 다른 점들이 한없이 커질 때, 그 극단에는 사회적 약자가 만들어지고 그들에 대한 몰이해가 생긴다. 차이는 권력구조와 결합하여 차별이 되고 차별받는 약자는 차별하는 권력적 주체에 의해 -몰이해의 끝인-'타자화'된다. 한나아렌트가 제시하는 '사유'는 타인에 대한 사유인데, 소통도, 소통할 의지도 없어 타인에 대한 사유가 끝내 불가능해졌을 때, 그 끝에 타자화가 탄생한다.



평범한 (권력의) 배달부가 평범하지 않은 학살의 배달부로 행위할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분리전략으로 인한 타인의 분리, 별개의 집단화를 거쳐 비인간화된 '사회적 약자' 집단(B)이 탄생할 때, 비인간화된 '차이'가 존재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우위'의 권력을 점하는 이들(A)이 있다. 누군가가 A에게 '네 상대적 우위를 찬탈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속삭이고 끊임없이 A와 B의 차이를 강조한다. B가 A의 사회적 지위를 무너트릴 것이라는 공포는 A에게 소통, 사회문제에 대한 지식,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따위가 존재하지 않을 때 비교적 쉽게 A를 함락시킨다. A와 B의 차이-인종, 민족, 계급-는 이제 A의 머리 속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벽을 만든다. A의 머리 속에서 B는 더럽고 범죄를 일으키고 A가 열심히 일군 사회를 망가트리는 존재가 되었다.



사유의 무능성은 모든 종류의 생각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력과도 상관이 없다. 아이히만의 사례는 우리에게 사회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름'에 대해 사유할 것을 말한다. 나와 타인의 다름,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차별, 차별에 의해 달라지는 경험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해 소통하고, 소통할 의지를 가지고 다가갈 것을 말한다. 즉,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 다름에서 나오는 다른 경험을 듣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그 소통의 의지가 사회 전체가 혐오로 얼룩져 가는 걸 막아줄 수 있는 개별자의 힘이다.



2025.9.9

다름을 듣자



* 한나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p210-211


- 저도 한나아렌트를 잘 아는 것은 아니라서 책을 다시 읽고 관련 논문을 보느라 오늘 업데이트가 조금 늦었습니다.

- '나'의이름은 -4편에서 이어집니다. 상중하로 끝내려고 했는데 3편이 길어져서 1-4로 제목을 변경했습니다. 4편에서 완결될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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