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살게 하는 것
나는 늘 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차창에 맺히는 빗방울처럼 처음엔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던 생각은 점차 뭉치고 모여들어 더 큰 빗방울을 만들고, 충분히 무거워지면 어느 순간 한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그 흐름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자기혐오라는 바닥. 타고난 기질과 생의 요인들이 뒤섞여 생겨난 나의 오랜 물길이다.
한 번 물길이 만들어지면 여간해선 방향을 틀기가 어렵다. 나는 차라리 생각을 멈추길 시도한다. 잠시나마 나를 잊기 위해, 나에게서 도망쳐 타인의 세계로 망명하기를 선택한다. 루틴처럼 일주일에 두세 번, 퇴근 후에 영화관에 간다. 극장 불이 꺼지고 내가 사라지는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 잠시 나에게서 놓여나 타인이 되어 보며, 또 하루를 살아낼 동력을 얻는다.
때로는 영화관엘 가는 대신 좋아하는 배우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읽히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런 편지를. 편지에는 조금은 절제되고 포장된 내가 담긴다. 어차피 그는 나를 모르지만, 그럼에도 예의를 지키며 적절히 나를 숨긴다. 그의 시선으로 나를 읽어 본다. 그에게는 기어이 좋은 것만을 주고 싶다. 나의 비참함을 떠넘기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다정함. 행여라도 우울의 얼룩이 담기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쓰다 보면, 구깃하던 내 마음도 한결 단정해진 기분이 든다.
영화 속 인물이 되든, 편지를 읽을 사람의 시선이 되든, 타인의 삶이라는 렌즈를 통해 나는 나를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약간만 각도를 틀었을 뿐인데 숨통이 트이는 기분. 물론 임시방편일 뿐, 무엇을 하든 나라는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이 지독한 순환을 완전히 끊을 방법은 없다. 빗방울은 계속해서 관성대로 흐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를 살게 하는 이 정도의 도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다음 주엔 또 무슨 영화를 볼까, 오늘도 퇴근 전 CGV 앱을 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