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버 이야기
전에 말했죠? 나는 가끔, 아니, 조금은 자주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살짝 정정하자면 돌아보는 것보다 들여다본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네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생각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그런 형태를 가지게 되었는지 쭉 들여다봐요. 한… 10미터쯤 들어가다 보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도 잊을 만큼 깊은 곳까지 이르게 되는데, 너무 깊은 곳은 산소가 부족하거든요. 호흡이 힘들어지면 곤란하니까 그럴 때에는 얼른 위로 올라옵니다.
근래에 잠깐, 10미터쯤 아래로 내려가 봤어요. 거기에서 만난 건 고등학생 시절의 가엾고 못난 나였습니다. 그때에는 그냥 멍청한 못난이라고만 여겼는데, 지금 보니 나쁘지 않았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나를 미워했을까요, 나는?
내가 만난 나는 열아홉 살의 4월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딱 요맘때였네요. 우리 학교 뒤에는 벚나무를 가로수로 둔 산책로가 있었어요. 우린 청춘을 눈앞에 둔 아이들이었고 눈만 돌리면 벚꽃잎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수험생이라 한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요? 우리의 마음은 이미 저 밖을 거닐고 있었고, 수업에 집중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 날은 보충 수업이 없었고, 학년부장 선생님께서는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3학년 전체가 학교 밖으로 나왔어요. 날이 흐리기는 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땅은 초록빛이었고 길 양 쪽의 나뭇가지에는 꽃송이가 그득그득, 꼭 부러질 것만 같았어요. 바람이라도 살짝 불어오면 때를 놓칠세라 벚꽃잎이 휘날렸고, 아, 예뻐라. 지금도 그 기분과 장면을 잊지 못해요. 성인이 되기까지 열 달도 남지 않은, 낡아가는 교복을 입은 우리와 머리 위에서 잔뜩 날리는 봄이라니.
야, 우리 사진 찍자. 벚꽃 피었는데 사진 한 번 찍어야지. 고3 인생에 뭔 낙이 있겠냐? 빨리 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그 날은 달랐습니다. 얕게 이는 바람에도 즐거워하는 친구들에 덩달아 기분이 들떴는지 나도 모르게 흔쾌한 마음으로 프레임 안에 걸어 들어갔어요.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친구들과 그 사이에 있는 내가 보였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못난 겉모습, 그보다 못난 내 속이 들여다 보였던 건요. 내 겉모습을 미워하는 나와 눈이 마주쳤던 건요. 기분이 꼭… 트램펄린 위에서 신나게 뛰다가 땅으로 내려온 것 같았습니다. 땅 속의 누군가가 나를 꽉 붙들고 놔주지 않는 듯한, 그 느낌이었어요.
삽시간에 변했어요. 하늘은 더러운 잿빛이 되었고,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은 이내 쌀쌀하고 외롭게 다가왔습니다. 초록빛 땅은 어둑한 늪이 되어 일렁거렸어요. 그제야, 부러질 듯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짓이겨진 땅바닥의 봄이 보였습니다. 다시 한번 내게 미움받는 나와 눈이 마주쳤어요.
그 후부터는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겉모습이 싫고,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마음은 더 싫고, 끔찍하고. 계속해서 미움을 키우며 짧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석식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고 나니 자율학습 시간이 되었어요.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율학습 시간이니 수능특강을 꺼냈어요. 그때부터 싫은 건 안 하는 애였으니, 당연히 좋아하는 국어였고요.
그런데 갑자기 미움이 흘러나왔습니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흘러나온 그게 미움이었는지, 화였는지, 원망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세 가지가 전부 뭉쳐진 응어리를 토했던 건지. 금방 삼킬 수 있을 줄 알고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웬걸. 계속 밀려 나오더라고요. 대충 펴둔 수능특강 목차 페이지에 눈물이 스며들 때쯤, 차라리 화장실에 가서 울고 오는 게 낫겠다 싶어 졌어요. 이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조용히 일어나 뒷문으로 나가던 나를 붙잡은 옆 반 담임 선생님. 아마 그 날 자율학습 감독이셨을 거예요.
너 왜 울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해합니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봐 온, 장난기로 가득했던 학생이 답지 않게 엉엉 울며 뒷문을 나서니 당황스러우셨을 거예요. 선생님의 수업을 재미있게 듣던 학생이니 걱정도 되셨을 거고요. 하지만 선생님의 외침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제게 집중되었던 건 좀 당황스러웠어요. 당연히, 원망하지는 않아요.
옆 반 담임 선생님께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급히 화장실로 걸어갔습니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부스러기 하나까지 쓸어내고 나니 놀라울 만큼 괜찮아졌어요. 담임선생님께서도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돌아온 자리에는 사랑하는 K의 나를 걱정하는 쪽지가 남아 있었고요. 아마 그들에게는 둘러댔던 것 같아요.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갑자기 터진 것 같다고요. 뭐, 어쨌든 인복 하나는 괜찮은 것 같아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걸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대충 저 정도로 들어갔다 나왔더니 드는 생각은 하나였어요.
스스로를 미워했던 그때의 나는 뭘로 이루어졌을까?
나는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 그 혼자서 만들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전체적인 성격부터 시작해 아주 작고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도 말입니다. 오직 그만의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 가엾고 못난 나를 미워했던 게 적어도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닐 거라는 얘기예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조금씩은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변호일 수도, 변명일 수도 있어요. 여러분 중 누군가는 내게 ‘남 탓한다’, ‘피해의식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근데요, 미움은 불씨 같은 거예요. 주변을 감싼 산소가 없으면 커질 수 없습니다. 특히 나를 향한 미움은 더 그렇다고 생각해요.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조금 덜 미워할 수 있기를 바라요. 잘못한 게 아닌 이상, 잘못된 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소릴 할 거였으면 10미터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빈 부분이 있고, 틈이 있고, 모자라요. 가엾고 못난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더 깊게 얘기해볼 수 있길 바라요. 불씨를 키우는 산소에 대해서요.
- 앰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