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배가 아팠다. 아니, 정확하게는 불편했다. 처음엔 배탈이 난 줄 알았다. 위장이 예민한 데다 뭐든 급하게 먹어서 배앓이를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배에 수건을 두툼하게 올리고, 그 위를 다리미로 문질렀다. 그로테스크하지만 따뜻하고, 효과 있는 치료법이었다.
그 날은 배가 무척 아팠다. 엄마가 다리미 치료(?)를 할 때마다 사용하는 수건을 들고 안방으로 갔다. 드러누워 치료 준비를 마치고 집도의 엄마를 불렀다. 여름방학이라 우리집에서 지내던 사촌 동생은 ‘누나, 또 배 아파?’ 하고 물었다. 가라앉길 바란 복통은 그대로 남고, 기분만 가라앉았다. 여름이면 내 피부가 되는 짙은 자주색 반바지를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그러질 못하니 인생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먹은 걸 천장에 하나 둘 그리며 통증의 원인을 추적하다가 화장실에 갔다. 생경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정기적으로 팬티에 묻은 피를 목격하고, 갑옷 없이 온갖 부정적 감정과 전쟁을 치르고, 아끼는 짙은 자주색 반바지와 헤어져야 하는 일이.
정자, 자궁, 낙태 수술을 피하는 태아 그리고 센 척, 아는 척하며 농을 던지는 남자아이들이 우글거리는 ‘성교육’을 거쳤다. 생리, 생리대, 탐폰, 콘돔은 학교 밖에서 은밀하게 익혀야 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생리를 처음 만났을 때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를 부를 뿐이었다. ‘난 다 컸어!’라고 하지만, 새가 되겠다며 담장 위에서 우산을 펼친 채 뛰어내리고,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브래드 피트와의 결혼 계획을 쓰고, 친구의 H.O.T. 털장갑을 쓰다듬으며 부러워하는 12살 애는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엄마를 불렀으니까.
엄마가 알려주는 대로 팬티에 생리대를 붙였다. 며칠 동안 이 낯선 무언가를 몸에 바짝, 정확하게 대야 한다는 게, 몇 십년 동안 주기적으로 이런 날들을 보내야 한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날 놀리고 도망가는 사촌 동생을 따라 달릴 수 없고, 예민한 피부와 쿵짝이 맞는 생리대를 찾아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고, 놀러갈 때 여행지 공부보다 내 생리주기 따지는 걸 먼저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모든 처음은 예상과 다르고, 당황스럽고, 때론 달갑지 않으나 한편으로는 ‘처음’ 그 자체가 주는 설렘이 있다. 하지만 초경은 아니었다. 생리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존재감을 뽐낼 것을 전혀 몰랐으나 신기하게도 그랬다. 그건 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저 먼 옛날의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식스센스에 불이 켜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2살 애는 그 또한 알 리 없다. 언제쯤이면 다시 반바지를 입고 달릴 수 있을지 궁금해할 뿐.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