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버 이야기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넘어가는 겨울로 기억한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나는, 친구들과 2박 3일 수련회에 갔다. 하루 종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다 지쳐서 졸고 있었는데, 왠지 찜찜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축축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가 자서 그럴까? 아니면 자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지 않아서? 씨, 창피해.
눈만 굴리다가 이불을 쓱 만져 보았다. 어둑한 조명에 비춰지는 건 피가 묻은 손이었다.
피…? 왜 피가 나지?
더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내 것이 아닌 이불에 든 핏물을 빼야 했다. 생각이 그쯤 미쳤을 무렵 깨달았다.
아, 나 이제 그거 하는구나, 생리.
진작 엄마에게 생리에 관해 교육을 받아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았다. 일단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저 생리하는 것 같아요.”
“정말? 일단 속옷 챙기고, 가서 씻고 있으면 선생님이 옷이랑 생리대 가져다 줄게.”
속옷과 잠옷 바지를 손빨래하고, 씻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옷과 생리대를 가져다주셨다. 예전에 엄마가 알려주신 대로, 저번에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팬티에 생리대를 붙인 후 입었다.
세상에… 이렇게 불편할 수가. 이게 어른인가? 어른들은 다 이러고 사나? 어떻게 이렇게 살지? 아… 진짜 X됐다, 내 인생.
그렇게 엉거주춤, 어기적어기적 침실로 돌아가자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아주 따뜻하게 맞아줬다.
“생리하는구나? 여자가 됐네. 축하해. 이제 엄마 될 수 있어. 축복이야. 생리대는 어떻게 붙이냐 하면… 잘 때는 약간 뒤쪽으로 해서…”
다 안 들렸다. 여자가 되었네, 축하해, 이 말 빼고는.
도대체 왜 생리를 하면 여자가 되는 거지? 난 원래 여잔데? 이렇게 불편한데 뭐가 축하할 일이지? 뭐, 축하 한다니 좋은 건가 보다. 그냥 뭐, 좋은 건가 보다.
그렇게 넘기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생리해.”
“뭐? 어떻게 했어?”
“옷 다 빨았고, 이불도 세탁기에 넣었어.”
“생리대는?”
“선생님이 주셨어.”
“아이구, 감사해라. 그럼 조심해서 잘 놀다 와. 혹시 아프면 전화해. 데리러 갈게.”
“응. 안녕히 주무세요.”
“고생길 시작이네. 생리 안 새게 생리대 잘 붙이고 잘 자.”
엄마랑 통화하고 나니 혼란스러웠다. 선생님과 애들은 축하한다고 하고, 엄마는 고생 시작이라고 하고. 좋은 일이라는 건지, 나쁜 일이라는 건지 헷갈렸다.
여전히 여자가 되었다느니 축하한다느니 하는 말을 이해할 순 없다. 하지만 뒤집히는 속을 안고, 찢어질 것 같은 아랫배를 쥐고 인생의 1/4를 보내는, 흔한 여성이 되어 살다 보니 ‘고생 시작’이라던 엄마의 말이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건 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정확하게 아주 잘 안다.
앞으로 수십년을 이러고 살아야 한다니… 아우, 지긋지긋해. 축복은 무슨. 축하는 무슨!
- 앰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