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초경’을 맞이한 후 내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다. 날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정확하게는 아빠와 엄마가 날 대하는 방식 역시 변했다.
학교와 학원을 무사히 클리어 하고 집에 갔을 때 책상에 놓인 작은 상자가 눈에 띄었다. 그 안엔 가죽시계가 있었다. 아빠의 선물임을 단번에 알았다. 아빠는 나에게 좋은 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시계를 사줬으니까. 그런데 12살의 나에겐, 학교와 학원을 돌고 도는 것 말고는 변화가 1g도 없는 생활을 하던 나에겐 시계를 받을 만한 일 역시 1g도 없었다.
“엄마, 아빠가 시계를 사주셨어.”
“아까 너 생리 시작했냐고 묻고 외출 하셨는데, 그때 사오셨나 봐.”
아빠는 어릴 때 서당을 다니며 한문을 익혔고, 7살 어린 아내와 대화를 할 땐 ‘자네’라 칭하고, 여가를 독서로 채우며 딸을 깨울 땐 말없이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을 뿐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내 ‘초경’을 알고, 시계를 선물했다는 건 ‘초경’이 좋은 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정한 행동으로 딸을 대하는 아빠의 사고에서 ‘딸의 초경’은 선물, 축하와 긴밀하게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역시 며칠 후 내 손목을 쓱 당기더니 팔찌 하나를 채워주셨다.
“생리 기념 선물.”
아빠의 생리 기념 선물 시계는 분침과 초침이 색달라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엄마의 생리 기념 선물 팔찌는 심플한 장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문득문득 손목에 있는 시계와 팔찌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생리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던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 시점을 묻는다면 그때라고 대답할 것이다.
집에 사촌오빠가 놀러 오면 엄마는 날 내 방에서 ‘혼자’ 자게 하지 않았다. 전처럼 달리고, 구르고, 뛰어내리면 ‘여자애가!!’ 꾸짖었다. 말수가 적은 아빠가 어울리지 않게 ‘남자는 아빠 빼고 다 늑대야’라는 상투적 대사를 내뱉었다. 학원에서 단체로 야영을 가거나, 친구들과 놀 때면 꼭 ‘남자는 몇 명이야?’ 물었다. 사람을 남자, 여자 성별 나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래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때문에 부모님이 질문하면 머릿속으로 친구들 얼굴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꼽았다. 그러다 문득, 손목에 있는 시계와 팔찌를 봤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생리를 축하했다. 하나뿐인 딸의 초경을 환영(?)했다. 하지만 그 팔찌와 시계를 찬 이후 나의 세계에 ‘남자’가 생겼고, 그 ‘남자’는 조심해야 할 대상이며, 나는 더 이상 전처럼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없는 ‘여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리는 단순히 나의 성장, 거쳐야 할 생의 관문 중 하나가 아니라 ‘여자’에 더 닿아 있었다. 성별 중 하나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보부아르가 말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의 ‘여성’에 더 닿아 있었다.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