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버 이야기
장마다. 낮 밤 할 것 없이 비가 내린다. 탁한 색의 하늘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맑은 날 회사 건물 옥상에서 시선을 돌리면 멀찍이 보이는 산의 선이 요 며칠은 구름에 반쯤 가려져 있다. 시원스레 꺾인 선을 보는 게 참 좋은데 아쉽다.
1. 지속되는 흐린 날씨는 기분의 그래프를 일직선으로 쭉 편다. 크게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게. 옷이 젖는 게 싫고 우산을 챙기는 게 귀찮고 꼬이는 이어폰 줄이 짜증나지만 그럼에도 장마가 싫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기분은 사람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흐린 날씨가 만들어 주는 일직선의 기분이 가장 편안하다.
사실은 감정의 폭이 넓고 기복이 큰 편이나, 나는 살면서 아주 조금 즐겁고, 아주 조금 슬프고 싶다. 내게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 단단하고 잔잔한 사람이고 싶다. 쉽게 들뜨거나 자만하지 않고, 또 쉽게 무너지거나 다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며칠 전 하다와 함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다, 제가 그 애와 나누었던 건 사랑일까요? 저는 요즘 사랑이 허상 같다고 느껴요. 사랑이 뭘까요?
앰버, 살아가면서 만드는 나만의 사전에 정답도 기준도 없는 기록을 해나가는 게 인생 아닐까요? 그러니까 사랑에 대해 정의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흐른 생각은 어느 지점에 멈췄다. 보편적으로 말하는 ‘연애’라는 게 사실은 그냥 역할극일 수도 있겠다.
‘연애하자’로 막을 올리고 무대에 서서 2인극의 배우가 된다. 그렇게 서로에게 있어 유일무이한 사람이라는 역할을 부여하고 열연을 펼친다. 그렇게 발단-전개-절정을 지나 결말에 다다르면, 러닝타임이 끝나고 불이 꺼지면 ‘헤어지자’로 막을 내리는 거지.
누군가에게 있어 연애의 본질이 사랑이든 역할극이든 그게 가치 없는 일이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어떤 일이든 뭐 하나-연애에선 아마 즐거움이겠지,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얻어갈 수 있다면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건 아주 소모적이고 피곤하면서 동시에 꽤나 즐거운 일이니까.
장맛비가 내리는 낮에,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나부끼는 나뭇잎을 보며 이런 생각들을 해 봤다.
- 앰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