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과 생리

원더풀레사 이야기

by 오늘

2015년 5월.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마라톤을 시작했다. 훈련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넌 꾸준히 운동하고 있으니까 10km 정도는 그냥 뛰면 될 거야. 1시간 안에만 들어오자' 이런 가벼운 마음이었다. 뛰기만 하면 된다는 나만의 패기로 생애 첫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생각보다 결과도 좋았고, 무엇보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그 쾌감은 잊히지 않는다.


첫 대회 2년 후 2017년 5월.

운동 욕심이 가득한 나라는 사람은 생애 첫 하프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도 나이키라는데... 이건 하늘의 뜻이다! 무조건 고! 이번엔 2시간 안에만 들어오자!

신청하고 대회 날짜를 확인했는데(순서가 잘못되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

가만있어 보자... 날짜가... 불안한데?


약을 먹을까 고민도 했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을 선호하고 피임약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오히려 약을 먹음으로써 컨디션 조절마저도 실패할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에 먹지 않았다. 대신 배를 따뜻하게 하려 노력을 했으며, 몸을 그나마 덜 무겁게 하려고 대회 전날까지 자극적인 음식과 간편식은 되도록 피하는 등 나만의 방식으로 마라톤을 준비했다.


생리와 겹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과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으로 슈퍼 롱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착용하고(탐폰도 고려해보았으나 아까 말했듯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선호하는 1인이다.), 목이 긴 양말을 신고 러닝화를 신었다. (러닝을 할 때, 특히 생리 중에는 하중으로 쏠리는 힘의 강도가 평소보다 훨씬 높다. 발목 부상 방지 차원에서 가볍고, 쿠셔닝이 좋고, 편한 러닝화를 신는 것이 좋다. 발뒤꿈치의 쓸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목이 있는 양말을 신어주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가방에는 생리대 여유분, 상비약, 모자, 선크림, 밴드 정도만 챙겼다. 뛸 수 있는 에너지를 채우려고 두유 1팩과 바나나 1개를 먹고, 경건하게 마라톤 출발지점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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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몸은 무거웠지만,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함성에 둘러싸여 설레는 마음과 비장한 각오로 뛰었다. 역시나 생리 중에는 뛰는 게 쉽지 않았고, 빠지는 아픈 느낌이 자꾸만 들어서 뛰는 것을 멈추고 걸었다. 그렇게 걷는 중 우연히 어떤 여성분과 발을 맞추어 걷게 됐고,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바로 같은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생리 중 마라톤이라는 주제로 대화의 장을 열었고, 그 여성분은 탐폰에 생리대까지 착용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급수대에서 제공하는 초코바와 물을 먹고 다시 힘을 내보자며 페이스메이커들을 따라 속력을 냈다. 처음에 페이스 조절을 한 덕분인지 10km 달렸을 때보다 오히려 덜 힘들게 느껴졌고, 달리면서 '와.. 힘들어서 죽겠다.' 하는 순간은 없었다. (물론 미치게 힘든 건 사실이다.) 그렇게 나름 선방하며 2시간이 되기 전에 하프 코스 결승점을 통과했다.


이 첫 경험을 잊지 못해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대신 이제는 우선순위를 바꿔 마라톤 대회의 날짜보다는 나의 생리 주기를 먼저 확인한다. 되도록 좋은 컨디션이 예상되는 날짜에 있는 대회를 선택하는 편이다. 마라톤도 중요하지만, 그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건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 원더풀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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