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해마다 여름이면 대가족이 여행을 떠났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거나, 깊은 산속 단 하나뿐인 숙소를 빌려 주말을 보냈다. 생리를 하지 않았던 어릴 땐 그 여행을 고대했다. 하지만 초경 이후엔 휴… 반갑지 않았다.
날짜가 정해지면 생리 예정일부터 확인했다.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각자 사정을 고려해 선택한 날짜라 내 편의를 봐 달라 할 수 없으니까. 그런 번거로움+불편이 성가셔 어느 시점부터는 여행에 동참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사생활을 캐묻는 어른들과 걱정을 가장한 무례한 말에 지어야 하는 거짓 웃음도 피곤했다.
외할아버지 칠순을 기념할 겸 떠나는 여름 피서는 피할 수 없었다. 엄마는 15년 전에 헤어진 사촌동생과 재회하는 자리이기도 하니 꼭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때 생리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좋은 숙소를 예약했으니 문제없을 거라면서. ‘그건 엄마 생각이고…’ 버럭 하려는 본능을 진정시켰다.
정직한 생리는 여행 첫 날 보란 듯이 시작했다. 역대급 생리통도 펼쳐졌다. 약을 먹어도 아파서 표정이 구겨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예~ 잘 지내셨죠~’ 인사하고, 구석에 앉아 고통 50%+짜증 50%가 섞인 심신을 달랬다. 강력하게 혼자 있고 싶어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조용히 있었다. 사방에 널린 돌처럼 위장했지만 눈에 띄었는지 족히 서른 명이 넘는 가족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 던졌다.
왜 거기 있어? 표정은 왜 그래? 얼굴 좀 펴라~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요.
정적.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 가족들을 피해 숙소로 들어가 누웠다. 아무리 큰 생리대를 차도 언제 어떻게 샐지 모르는 게 생리인지라 편하게 눕지도 못했다.
왜 방에 있어? 나와~ 고기 먹어, 고기!
저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빨리 나와! 외할아버지 생신인데 너만 방에 있으면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왔고, 사람들 틈에 껴서 밥을 먹었다.
너는 생리 미루는 약이라도 먹지 그랬냐! 쯧!
생리 참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좀 참아!
하… 외할아버지 생신을 기념에 떠난 여행의 밥상머리에서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은 없어요. 특히 피임약은 부작용이 심한 편이고요. 그래서 제가 아는 약사님은 권하지도 않는데 그걸 먹으라뇨. 그리고 생리를 참으라니… 생리가 참을 수 있는 거면, 참았다가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는 거면 제가 지금 이러고 있진 않겠죠?’라고 할 수 없으니 무표정으로 밥을 먹었다.
역시나 체해서 가슴팍 퍽퍽 두드리고, 유난히 양 많은 생리 때문에 생리대를 수시로 갈고, 인적 없는 곳 찾아 돌아다니고, 이 여행에 꼭 참석할 것을 강요한 엄마마저도 그럴 거면 왜 왔냐고 하는 통에 그 여행은 여전히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휴가, 여행 다 좋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오감이 자극된다. 잠시만 다녀와도, 조금만 쉬어도 활력이 생긴다. 그런데 ‘생리’가 앞에 붙는 순간 피곤해진다. 생리 예정일 피해서 날짜 정하고, 함께 하는 사람과 조율하고, 그게 안 돼서 나처럼 생리 중에 떠나면 또 거기에서 고충이 생기고… 피임약(생리 미루는 약) 먹어서 조절하면 되겠지만, 아직도 그 약사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어요.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은 없어요. 게다가 피임약은 더 위험한 편에 속하고요.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