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이브?

하다 이야기

by 오늘

제가 처음 본 당신은 의사 가운을 입고, 성공을 위해 ‘뭐든’ 하는 캐릭터였어요. 맞아요, 특별한 것도 없고 특이한 것도 없는 인물이죠. 게다가 외국에서 ‘동양인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왜 또 그리 한결같은지. 절레절레. 메디컬 드라마를 좋아해서 꾸준히 보기는 했지만 의리(?) 때문이었지 취향 저격과는 거리가 먼 시청이었어요. 어느 시점부터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고, 당신도 잊었죠. 그런데 트위터에서 외국에 사는 친구들이 당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단순하게 ‘새로운 작품을 찍었나?’ 했는데, 그랬는데, 와우!


사진 © IMDB



‘왓챠플레이든 넷플릭스든 어디든 좋으니 빨리! 현기증 난단 말이야!’ 발을 동동동 구르다가 드디어 마주한 당신 이브는, 당신과 빌라넬의 이야기는 제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으로도 모자라 제 뒷덜미를 잡고 질질질 끌며 달리는데, 와우! 끌려 가면서도 ‘더! 더! 더!’ 외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저는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걸 파헤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런 작품을 볼 때 심장이 제일 쫄깃쫄깃해지고, 피가 격렬하게 돌아요. ‘또 살인사건 없나~’ 하며 이것저것 찾는데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어요. 곰곰 생각해 보니 제가 본 작품 대부분 감정이 없는 남자나 피해의식 가득한 남자가 등장하고,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죽이거나 죽여서 먹거나, 셋 다 하거나 셋 중 하나 또는 둘을 하더라고요. 피해자는 ‘여성’이고요. 때론 못생긴 남자가 미남 연기까지 하는데… 저런. 식상하디식상한 작품이 우글거리는 숲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였던 제가 당신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무의미한 일상에 싫증을 느껴 화면 가득 뚱한 표정을 짓다가 빌라넬을 ‘직감’한 후 수분을 가득 빨아들인 식물처럼 변하던 당신은 깔깔했던 제 입이 촉촉하게 만들었요. 색감 도드라지는 옷을 입고 아름다운 거리를 거닐다 먹잇감을 낚아채는 빌라넬은 소름 돋게 했고요.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하고,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지 모호하게 전복되는 이브 당신과 빌라넬의 관계는 누워서 드라마를 보던 저를 일으켜 포효하게 했죠. 사실 다른 작품과 별 차이는 없어요. 크게 보면 그렇죠. 그런데 포인트 그러니까 ‘킬링 이브’의 포인트는 ‘두 여자’가 이야기의 핵심인 거잖아요. 바로 그 지점이 제가 당신과 킬링 이브를 ‘남다르게’ 느끼도록 했어요.


전 게으른 창작자가 싫어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며 자기복제 하고, 남들과 똑같이 걷는 거, ‘나 게을러요’라고 말하는 거잖아요. 등장인물의 성별만 바꿔도 달라지는데, 그런 시도를 통해 많은 것들이 선명해지는데 왜 그걸 하지 않죠? 개탄스러워요.


킬링이브04.jpg 사진 © IMDB


당신 이브, 산드라 오, 당신이 최근에 한 인터뷰를 봤어요. 변화는 조금씩 찾아오니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버티자고 했죠. 버텨요. 버텨줘요. 빌라넬과 계속 밀당하고, 피 맛을 본 짐승처럼 서로 뒤엉키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세련됨과 똑똑함을 잃지 말아줘요. 날 더 포효하게 해줘요. 계속 끌려 갈게요. 내 뒷덜미는 당신 것이에요.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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