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수고, 당연하지 않은 시간

하다 이야기

by 오늘

허공을 가르는 빨랫줄을 붙잡고, 온몸을 쫙 편 하얀 천.


맑고, 밝고, 깨끗한 날이면 엄마는 하얀 천을 삶았다. 솥에서 팔팔 끓인 후 여러 번 빨아서 널었다. 아주 어릴 땐 그걸 바라봤고, 좀 더 자랐을 땐 무엇인지 추측했고, 컸을 땐 정체를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화장실 대야에서 핏물을 뿜다가 속옷장에 개켜져 있던 엄마의 생리대였다.


그보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바싹 마른 천을 다리는 엄마의 모습이다. 옆에 앉아서 쪼글쪼글한 천이 펴지는 걸 관찰했다. 빨간 피와 갈색 흔적이 사라진 엄마의 생리대는 가끔 나의 것이 되었다. 피부가 편안해서 좋지만, 생리대가 움직일까 봐 불안하고, 사용 후 빨고 삶고 건조한 뒤 다려서 정리까지 해야 하는 불편함이 너무 컸다. 물론 내가 사용한 것은 엄마가 처리했으나 수고스럽고,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니까.


20살 무렵 독립을 하고, 청소 빨래 정리정돈을 하면서 종종 엄마의 생리대를 생각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생리대까지 빨고, 말리고, 다리고, 정리했을 엄마의 하루는 어땠을까. 5시간 남짓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엄마의 그러니까 생리하는 엄마의 하루는 촘촘하게 반복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구분이 없었겠지. 엄마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 속상했다. 생리와 생리대는 온전하게 나 혼자만의 사투(?)이나, 넓게 보면 인류 전체의 일이며, 거부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사항이다. 그런데 매번 혼자 떠안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체념한다.


“엄마, 왜 면생리대만 써?”


“피부가 편하니까.”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불편하나 엄마는 그 하나 때문에 많은 걸 포기했다. 그런 상황과 사정에 대해 불만을 갖지도 않았다. 만약 엄마의 생리가 ‘완경’되지 않았다면 요즘에 많이 나오는 면생리대 제품을 선물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뜻 모를 마음의 짐을 좀 덜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면생리대 제품도 결국 사용자가, 빨고, 말리고, 정리해야 하니 큰 의미는 없겠지.



내가 빨겠노라 나선 적은 없지만, 잘 마른 엄마의 생리대를 몇 번 개킨 적은 있다. 더러운 손으로 만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손을 씻고, 반듯하게 개켜 엄마의 속옷장에 정리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덕분에 엄마의 하루는 생리할 때보다 조금, 아주 조금 여유로워졌다. 그 여유에 자수를 놓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도 배운다. 인생의 절반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말이다.


‘이건 다 생리와 생리대 때문이야!’ 라고 하는 건 과장이다. 하지만 엄마가 하루에 생리대를 처리한 시간을 최소 10분이라고 가정하면 1달에 70분, 1년에 840분, 40년에 33600분이다. 당연히 최소 10분은 넘을 것이다. 그럼 엄마가 생리대와 씨름한 시간은 훨씬 더 길겠지. 그렇겠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누군가는 그렇게 살겠지. 살고 있고, 살아가겠지. 그렇겠지.


- 하다





nadograe.com/stor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