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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07. 2020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하다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 소개를 가장한 주접 떨기임을 미리 말씀드려요.)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엘라이자이다. 엘라이자는 언어장애인이고, 항공우주센터를 청소하는 직업을 가졌다. 혼자 살고, 집단의 주변 또는 바깥에 머문다.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으며 그녀 역시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구성한 하루 일과(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후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귀가)에 충실하다. 그것을 즐긴다.



그러다 한 '존재'를 만난다.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청소를 하다가 양서류 남자와 만난다. 실험 목적으로 아마존에서 잡혀온, 일부 원주민이 신으로 숭배하는 생명체이다. 엘라이자와 양서류 남자는 서로 경계, 교류, 교감을 거치며 가까워진다. 그가 학대당하고, 가까운 미래에 해부까지 당할 것을 안 엘라이자는 계획을 세운다. 양서류 남자를 물로 보낼 계획.

쫓고, 쫓기고, 다투고, 숨는 과정을 거쳐 양서류 남자와 엘라이자는 함께 물로 '돌아간다'. 함께 '돌아간다'라고 한 것은 엘라이자가 어릴 때부터 목에 지닌 흉터가 아가미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알쏭달쏭하다. 아가미로 변한 것인지, 양서류 남자가 변하게 한 것인지 모호하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기괴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작품을 만드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답게 이야기도, 색감도 '환상적'이다. 말하지 못하는 여자와 사람이 아닌 존재와 관계성, 물과 색으로 은유한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흑인 그리고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백인 남성을 등장시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혐오하는지 보여준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변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주체적으로 변모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많은 극이 그렇다. 하지만 소수자+약자/장애인+여성이 중심에 서는 경우는 드물다. 이 지점을 극대화하려고 감독은 백인 남성을 안티테제로 설정했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가 흐르는 과정에서 '정체성'이 확립되고, 그 밑바탕이 '사랑'인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사랑의 이유, 사랑의 형태는 사람마다, 관계마다 다르다. 사랑(명사)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사랑하다(동사)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내가 어떤 형태를 지녔든 나를 나로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대상이 자유롭고, 평안하도록 돕는 방식을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으로 택했다.



엘라이자는 말한다, 날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내가 어디가 모자란지 어떻게 불완전한지 모르는 눈빛이에요. 그 사람은 날 있는 그대로 봐요.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엘라이자는 자신을 그 무엇으로도 '분류'하지 않고, 자체로 봐주는 대상에 끌렸다. '나 그대로'를 '나의 정체성'으로 인정해주는 존재에게 끌렸다. 어쩌면 양서류 남자도 엘라이자의 그런 점에 끌렸을지 모른다. 함부로 잡아다 가두고, 가해하고, '크리처'라 분류하며 자신들과 선을 긋는 무리는 달걀을 권하고, 함께 음악을 듣고, 수어로 대화를 시도한 엘라이자와 분명 다르니까.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했으니 내가 날 방치해도 사랑해야지' 엇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항상 바란다,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하길, 내 모습 그대로 나를 보길. 그건 내가 상대에게 특별하길, 불변하길 바라기 때문 아닐까.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의 '유일함'이 상대에게 자리 잡을 테니까.


셰이프 오브 워터 마지막에 나온 시를 덧붙인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트위터에서 발췌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내 곁엔 온통 그대뿐,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마음을 겸허하게 하네,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인터뷰 한 대목도 덧붙인다.

상대를 찾기 전까지는 누구와 사랑에 빠질지 알 수 없죠.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형태가 없는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물과 사랑은 가장 잘 퍼질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것이죠.


- 하다  


   nadograe.com/storiG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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